[이남교의 일본어 원류 산책-45] '담뿍'에서 '닷뿌리(たっぷり)'

입력 2009-11-25 07:07:56

고향을 떠나 멀리 간 그 님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네온사인 밤거리에 휩싸여 고향의 그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부모의 재산만 탕진하는데, 일본에는 이런 자식을 일컫는 무서운 말이 있다.

대학에 가서 부모에게 용돈을 타 쓰는 것을 '오야노스네가지리(親のすねかじり)'라고 하는데, 이 말은 '부모의 정강이 뼈를 깎아먹는 놈'이란 뜻이다. 이 말의 의미를 알면 어디 용돈을 타서 함부로 쓸 수가 있을까?

우리 대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만약에 이보다 더 못된 아들이 있다면 일본에서는 '간도'감인데, 이 '간도'는 한국어에 없는 말로 '호적에서 파내 자식 관계를 말소하는 것'으로 아예 부자간의 인연을 끊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무라이 일본의 냉엄한 부자관계는 똑똑하고 올바른 자식에게는 '아도쓰기(後つぎ)' 즉 '후계자'라 해서 전 재산을 몽땅 그 한 아들에게 물려주는데, 만약 아들이 못났으면 똑똑한 '데릴사위'를 얻어 그를'아도쓰기'로 하기도 한다.

이야기를 마저 하자. 나는 무슨 이야기든 해피엔드를 좋아한다. 어쨌든 탕아였던 그는 세월이 약이라 개과천선, 주경야독으로 성공하여 '굉장한' 선물을 '담뿍' 가지고 조국으로 금의환향을 한다. 여기서 '굉장'은 일본어로 '교상'(きょうさん)이고'담뿍'은 '닷뿌리'(たっぷり)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그리 간절하지도 않았는데, 고향이 가까울수록 그리운 그녀의 모습이, 부모형제 모습이 눈앞에 삼삼해져 뭉클해지는 가슴으로 발걸음은 저절로 빨라져 간다. 아! 고향은 이래서 좋은 것인가?

재일동포들의 고국사랑을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재일동포들이야말로 '정없는 사막' 일본에서 한줄기 오아시스의 청수 같은 존재들인데, 주름진 그들의 웃는 얼굴은 마치 시골 토담에 핀 호박꽃처럼 너그럽고 온유해서, 나는 그들을 대할 때마다 무한한 감동과 사랑과 존경을 느낀다. 역시 인간은 어려운 이론이나 품위있는 매너보다도 순박하고 따스한 그런 만남이 진실되고 감동어린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나는 일본의 생활을 그릴 때마다 조국을 가슴으로 사랑하던 정 많은 재일동포들에게 따스함과 훈훈함을 느낀다. 노심초사 친정 잘 되기를 바라는 가난한 집에서 시집간 딸 같은 이들이여!

그대 애태우는 조국의 '사토'(里)에서 가득한 애정을 담아 부디 행복하게 잘 사시길! '아라 아라 가시고!' 경일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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