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원안 추진 마땅하다] <하> 뒤통수 맞은 대구경북

입력 2009-11-20 09:21:55

"국토 균형발전은커녕 지방 몰살 앞장"

온 나라가 세종시 얘기뿐이다. 정부는 '세종시 블랙홀'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세종시에 대기업, 의료기관, 연구소, 대학 등을 몰아넣을 기세다. 정운찬 총리는 엄청난 '특혜'로 유혹하며 재계 총수들에게 세종시 투자를 떠밀고 있다. '대한민국 총리'인지 '세종시 기업유치단'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다. 지방은 안중에도 없다. 이쯤 되면 지방과 공존하지 않겠다는 목소리로까지 들린다.

◆세종시에 멍드는 대구경북

이달 12일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DGFEZ)은 대구 달성군 현풍·유가면 일원에 조성 중인 대구테크노폴리스의 산업시설 용지 분양공고를 냈다. 이달 30일까지 분양을 원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입주기준 확인서를 받은 뒤 내달 1~3일 신청을 받을 예정. 하지만 분양공고를 낸 지 1주일이 지났지만 한곳의 업체도 응하지 않고 있다. DGFEZ 관계자는 "분양에 관한 문의 전화는 가끔 오지만 아직까지 사업계획서를 들고 찾아온 업체는 없다. 정부의 '신(新)세종시 플랜' 탓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지난해 5월 산업시설 용지 분양을 시작한 대구 동구 봉무동 이시아폴리스의 경우 기업 유치 활동이 눈물겹다. 이곳 산업시설 용지 35필지 가운데 23개 필지가 분양됐다. 언뜻 보면 괜찮은 성적표일지 모르지만 땅 크기를 보면 문제는 심각하다. 1년 6개월 동안 산업시설 용지 15만3천㎡(4만6천평) 가운데 20%가량인 3만㎡(9천평)만 채워진 것. 넓은 부지를 사용하는 대기업이 아닌 고만고만한 업체들만 들어온 셈이다.

DGFEZ 투자유치본부는 요즘 비상이다. 안 그래도 대구경북이 수도권에 비해 투자 유치 환경이 좋지 않은데 '세종시 특혜'라는 암초를 만난 탓이다. 신경섭 DGFEZ 투자유치본부장은 "이달 25일부터 62만7천㎡(18만9천평) 산업시설 용지 분양 신청에 들어가는 영천첨단부품산업지구 등 앞으로 각 사업지구에 알짜 기업을 채워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부터 앞선다"고 했다. "1년여 넘게 접촉해왔던 대기업이나 외국 기업들의 분위기가 세종시 문제가 터지면서 대부분 눈치를 보느라 엎드리고 있는 것 같아요. 원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땅을 주고 정부까지 나서서 힘을 실어주겠다는데 어느 기업이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리겠어요."

'세종시 블랙홀'의 여파는 경제자유구역뿐만이 아니다. 대구경북 미래의 먹을거리를 책임질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대구국가산업단지, R&D 특구, 교육국제화특구,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등 지역의 모든 현안에 미치고 있다. 정부가 세종시에 국무총리실 등 행정기관을 이전하려다 기업·대학·의료기관·연구소 등을 집적하는 쪽으로 전환하면서 대구경북의 현안과 정면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

대구시 한 관계자는 "세종시는 수도권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 등으로 우리보다 못한 조건은 땅값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것인데 이마저도 정부가 큰 폭으로 보전해주고, 총리까지 나서서 기업들에 세종시로 가라며 등을 떠밀고 있으니 경쟁이 되겠느냐"고 했다. 정부는 세종시 입주 기업 등에 대해 산업용지를 원가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공급하고, 세제 혜택 역시 경제자유구역(FEZ) 수준 또는 그 이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안대로 분양가를 적용하면 세종시의 조성원가는 3.3㎡당 227만원이지만, 분양가는 3.3㎡당 38만원으로 뚝 떨어진다는 게 시의 계산이다. 대구테크노폴리스와 성서5차산업단지의 분양가인 3.3㎡당 각각 72만원, 133만원과 비교하면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대구경북의료단지·신서혁신도시의 조성원가는 3.3㎡당 무려 287만원이다. 박인철 DGFEZ 청장은 "세종시에 좋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정부가 혈세를 무차별 퍼붓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묻고 싶다"고 했다.

◆세종시 원안 추진이 마땅하다

대구경북 의원들은 "세종시 원안대로 추진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대구 수성갑)은 "세종시에 기업과 연구소, 대학 등을 유치하기 위해 각종 혜택을 쏟아붓는다는 것은 지방, 특히 대구경북과는 공존하지 않겠다는 생각과 다를 바가 없다"며 "정부가 국책 사업을 추진할 때는 공정한 기준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대다수 지역의 불이익을 담보로 한곳에 몰아주는 방식의 정책은 문제가 많다"고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정책을 비판했다. 이 의원은 "당초 세종시의 본질은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는 새로운 '거점' 도시를 만드는 것이지 또 하나의 '기업' 도시를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세종시는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은 "세종시에 기업, 대학, 의료기관, 연구소 등이 모두 쏠리면 대구국가산단이나 혁신도시, 의료단지는 '빈 껍데기'로 변할 것이 뻔해 대구경북의 미래를 망치게 한다"고 비난했다. 이철우 의원(경북 김천)은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대로 가면 대구경북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영호남 8개 지자체 등 수도권과 충청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이 연합전선을 구성해 강력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재훈 영남대 교수(경영학부)는 "국토 균형발전에 어긋남은 물론 지방을 몰살시키려는 정책에 대해 눈치만 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같은 처지의 지자체끼리 연대해서 강력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구시 한 공무원은 "정부가 지방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종시에 특혜를 안길 경우 대구경북 등 전국의 경제자유구역, 혁신도시, 첨단의료복합단지, 국가산단 등에도 똑같은 수준의 혜택을 주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