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기업 다 빼가면 지방 혁신도시는 빈 껍데기
세종시 논란이 다시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2005년 세종시 계획의 모법인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5년 만의 일이다.
이번 정치권 논쟁은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 법 통과 당시는 행정의 효율성 문제 때문이었다. 수도와 200㎞ 떨어진 곳에 행정도시를 건설할 경우 부처 간 회의와 공무원의 국회 방문 등에 어려움이 있고 국가 비상사태 시 현안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점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논쟁은 '세종시 특혜' 논란으로 비화하고 있다. 알짜 기업과 특수 기능을 갖춘 기관들이 세종시에 쏠릴 경우 지방의 혁신도시와 산업단지가 건질 '물건'들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우려는 국가균형발전과 맞물려 있어 지방 출신 국회의원들은 비록 여당이라 하더라도 세종시 원안 수정 움직임에 등을 돌리고 있다.
총 사업비 20조원이 넘게 드는 세종시 건설 사업은 이미 5조4천억원이 투입돼 24% 공사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 토목 공사 단계는 지났고, 행정체로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관련법 통과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최근 정운찬 국무총리의 "원안대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발언이 불쏘시개가 돼 정치권에 다시 불이 붙었다. 세종시 원안으로는 자족 기능을 갖추기 어렵다는 게 정부 측의 주장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직접 "(세종시 원안 추진을) 양심상 그대로 할 수 없다.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 타협은 없다"고 수정안을 강력하게 추진할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세종시 그물망' 때문에 지방은 빈 껍데기가 될 것이라는 지방의 우려에 대해 정부 측의 반응은 현재까지 전무하다. 오히려 국무총리 등이 나서서 대기업 총수를 만나 정부 차원에서 세종시 입주를 유인하는 것에 대해 세종시를 '혁신도시에 오려는 기업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표현하는 여당 의원도 생겼다.
실제로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세종시에 유치하려는 정부 차원의 움직임 때문에 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를 추진했던 10여개의 지자체는 먼 산만 바라보게 생겼다. 롯데가 김천에 건설하려했던 맥주공장도 세종시로 갈 움직임이라 김천은 '닭쫓던 개' 신세다.
이렇듯 지방의 반발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어 '지방균형발전 없이 어떻게 백년대계를 준비할지'는 당분간 숙지지 않은 논쟁 거리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세종시 추진 주체의 변화도 논쟁을 부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지금은 한나라당이 법안 처리에 칼자루를 쥐고 있지만 세종시의 원래 명칭인 행정도시 건설 구상은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이었다. 따라서 그 지위와 성격에 대한 참여정부의 구상이 그대로 처리될지에 대한 논쟁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제기돼 온 것이다.
정치 환경 변화는 위정자들의 입장 변화도 불러왔다. 이 대통령부터 일관된 입장을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서울시장 재직 시절엔 "(행정도시 건설을)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고 싶다"고 언급했으나 대선 후보 시절엔 "기왕 시작된 것은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더 빨리 더 크게 해 놓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최근엔 "정권에 도움이 안 될지라도 국가에 도움된다면 일시적인 오해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택해야 한다"며 또 말을 바꿨다.
신행정수도 관련법이 통과될 때 당 대표를 지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입장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박 전 대표는 120석을 가진 야당 대표였으나 당시 당의 공식 입장은 '권고적 당론'으로 지금의 '원안 고수' 입장과는 강도가 달랐다. 박 전 대표는 행정도시특별법 국회 표결에서도 찬성표를 던지지 않고 기권했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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