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오늘은 달이 다 닳고(민구)

입력 2009-11-16 15:11:28

나무 그늘에도 뼈가 있다

그늘에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나있다 바람만 불어도 쉽게 벌어지는 구멍을 피해 앉아본다

수족이 시린 저 앞산 느티나무의 머리를 감기는 건 오랫동안 곤줄박이의 몫이었다

곤줄박이는 나무의 가는 모근을 모아서 집을 짓는다

눈이 선한 저 새들에게도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연장이 있다 얼마 전 죽은 곤줄박이에

떼 지어 모인 개미들이 그것을 수거해가는 걸 본 적이 있다

일과를 마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와서 달이 떠오를 무렵 다시 하늘로 솟구치는데,

이때 달은 비누다

뿌리가 단단히 박혀서 번뇌만으로는 달에 못 미치는 나무의 머리통을 곤줄박이가 대신,

벅벅 긁어주는지, 나무 아래 하얀 달 거품이 흥건하다

나무 그늘에서 뼈를 골라내는 감식안이라면 나무 그늘의 구멍도 수월찮게 통과하겠다. 곤줄박이 새가 감기는 나무의 머리카락. 나무와 새를 묶는 연기(緣起)가 시선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다. 달의 상상력 속에 나무와 새가 마음껏 지복을 누리고 있다. 달거품은 또 무엇인가. 구름들, 혹은 달속의 흐린 부분들이 나무를 씻어내는 비누거품으로 흥건하다. 오늘밤 흐리지 않다면 달의 거품을 읽어보아야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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