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동대구路의 히말라야시더

입력 2009-11-16 10:51:21

'가로수가 있고, 책이 있고, 여인이 지나간다.… 여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프랑스 센 강변 가로수 길의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을 읊은 시(詩) 구절이다. 프랑스 길거리의 상징이기도 했던 마로니에 가로수는 300여 년 전 루이 14세 때 심어졌다. 그 뒤 프로이센 전쟁 직후 플라타너스로 일부 바뀌었지만 독일의 보리수, 이태리의 포플러처럼 가로수는 각 나라의 도시 이미지를 상징하고 이방인들에게 그 나라와 도시를 기억시킨다.

우리나라에도 세칭 3대 '명품 가로수 길'이 있다. 전주에서 익산 사이의 100리 벚꽃 길, 청주시 입구의 플라타너스 길, 그리고 우리 동대구 관문의 히말라야시더 길이다. 그 3대 명품 가로수 길의 하나인 히말라야시더 가로수를 대구시 당국이 '동대구로 디자인 개선 사업'을 이유로 베어낼 모양이다. 도시 디자인의 변화와 진화는 필요하다. 비록 40여 년 가까이 조성된 가로수라도 도시 환경 변화에 적합지 않고 식물 생태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베어내고 다른 수종으로 바꿔 심을 수 있다. 그러나 과연 히말라야시더를 꼭 베어내야만 도시 디자인이 나아지는가? 이미 시민 여론조사에서는 그대로 두자는 쪽이 많고 40여 년간 직접 가꾸고 관리해 온 실무 공직자들도 대부분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도시 디자인 개선 사업이라는 프로젝트에 몰입된 대구시의 고위 책임자들은 뭔가 바꿈으로써 새롭게 보이고 싶은 의욕 탓인지 밀어붙이는 분위기라고 한다.

히말라야시더는 과연 베어내야 할 나쁜 나무인가? 히말라야시더는 수령(樹齡)이 2천~3천년이나 되는 생명력 강한 수종이다. 백향목(柏香木)이라는 이름으로 성서(聖書)에도 70여 회나 등장하고 수액(樹液)으로는 미라를 만든다고 할 만큼 병충해 등에 내성이 강한 성분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도시 공해에 잘 견뎌야 하는 가로수로서는 적합한 수종인 셈이다. 더구나 대구는 온대 남부 기후대(帶)에 속해 낙엽수가 많다. 따라서 히말라야시더 같은 잎 푸른 침엽수 가로수는 동대구로처럼 도로 폭이 넓은 거리에서 잎 떨어진 겨울의 삭막함을 커버해 주는 큰 장점이 있다.

히말라야시더를 보존하자는 식물학자들은 특히 동대구로의 지반(地盤)을 지적한다. 청석으로 된 동대구로 지반에서는 일반 수종은 우선은 심어지지만 15년 이상 되면 자라는 듯하다가 서서히 다시 죽게 된다고 말한다. 반면 40년 가까이 성장한 히말라야시더는 동대구로의 토양과의 적응 여부가 검증됐다는 것이다. 역대 전임 시장들이 굳이 히말라야시더로 골라 심고 40여 년 존속시킨 데는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란 주장과 맞닿는다.

그렇다면 빚더미의 대구시가 150억 원이란 예산을 써가며 굳이 명품 가로수를 베어내야만(또는 이식) 디자인 도시가 되느냐는 의문이 나온다. 중앙로나 동성로 거리 디자인의 성공 모델을 본뜨고 싶은지는 모르나 그쪽이 나름대로 문화적인 분위기가 나고 재미난 것은 소공원형 디자인이 잘 조화될 수 있는 도로 여건과 공간 환경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대구로는 중앙로와 달리 보행자가 거의 없는 차량 통과 중심의 광로(廣路)다. 따라서 나무를 베어내고 벤치나 산책 숲을 만드는 식이 아니라 자동차전용도로와 키 큰 상록가로수에 조화되는 선과 빛, 색깔을 창조해 내는 데 디자인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반대 측의 주장이다.

우리에겐 40여 년간 눈에 익어 덤덤할지 모르나 대구를 찾는 외지인들은 독특한 명품으로 본다는 나무, 그것도 거의 반세기를 거쳐 가꾼 명품 가로수를 그때그때 시장(市長)의 취향에 따라 뽑고 베거나, 토질과 기후를 우려하는 식수 전문 공직자들의 의견이 묻혀버리는 '디자인 개선 사업'은 재고돼야 옳다. 대구시내 가로수와 공원의 나무만 1천여만(萬) 그루를 심고, 가꾸며 반평생을 바친 퇴직 식수(植樹) 공무원의 한 사람인 이정웅 씨는 이렇게 토로한다.

"인공적인 디자인이 아무리 아름답기로서니 오래된 나무가 연출하는 아름다움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金 廷 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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