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향 짙게 밴 국화의 유혹… 계절 다 가기전 꽃집 들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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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당첨자=우승목(대구 동구 신기동)
다음 주 글감은 '독서의 계절, 추천 도서는…'입니다
♥ 오늘 꽃집 들러 '가을' 을 집안에 들어볼까
국화 옆에서 - 서 정 주 -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국화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서정주님의 시 '국화 옆에서'이다.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시를 감정으로 느낀 것이 아니라 은유법, 비유법 등 문법적으로 해부하면서 외운 것이라 그때는 이 시에 이렇게 많은 가을의 느낌이 묻어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 속 누님의 모습과 엇비슷한 모습으로 변해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을 본다. 해마다 가을이면 화훼단지를 찾아 소품 국화 화분이라도 가져다 계단에 놓아두고 쳐다보고 있노라면 국화야 말로 가을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부터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고 기온도 많이 내려갔다. 뭐가 바빠서인지 올해는 불로동 화훼단지 한번 들를 여유도 없이 추위가 다가와 버린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화훼단지를 찾아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가을 산도 구경하고 향기 가득한 가을을 우리 집에 옮겨다 놓아야겠다.
박정숙(대구 수성구 상동)
♥ 백일장 때 친구 시 몰래 베껴 우수상
가을만 되면 국화향이 참 좋다. 매년 가을, 각종 백일장의 단골 소재도 국화다. '국화'라는 주제를 보니 초등학교 때 백일장 풍경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2학년때였다. 그날 선생님이 국어시간에 내준 백일장 소재 중 하나가 국화였다. 국화로 뭘 쓰지? 고민하며 끌쩍거리고 있는데, 옆 친구가 쓰는 글을 흘끗 보았다. 그 친구는 당시 모든 선생님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아이였다. 공부도 잘하고 악기 연주도 잘하는데다 미술, 체육, 글쓰기 등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친구였다. 그 친구 역시 선택한 주제가 국화.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국화와 국화 향기를 '꿈에서 본 어머니 치마'와 연결시키는 전개였다. 나는 그 표현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어린 마음에 그 표현을 살짝 바꿨다. '꿈에서 본 누이의 블라우스' 뭐 이런 식으로.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한 표절이지만, 당시만 해도 '선생님은 절대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쓴 시를 당당히 냈다. 교내 글짓기 대회 결과로 나는 우수상을, 그 친구는 장려상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원래 아이디어를 낸 친구가 나보다 더 낮은 상을 받아 내심 미안했다. 그날 하교 시간에 영문도 모르는 그 친구에게 군것질거리를 사서 나눠줬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그러고 보니 '국화'에는 아련한 표절과 비리의 기억이 버무려져있다. 그래서 30년이나 지난 지금도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지금 그 친구는 아이러니하게도 판사가 돼 있다. 판사봉을 든 그 친구가 지금 내 얘길 들으면 뭐라고 할까?
김수진(대구 동구 율하동)
♥ 옛날 고향집 마당에 진동하던 국화향
일요일, 수목원에 갔다. 이름 모를 들꽃과 나무들에게는 이름표도 붙여져 있었다. 이곳저곳을 천천히 감상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감탄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여러 가지 색깔의 국화꽃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 진한 향기에 취해 딸아이와 잡기 놀이를 하면서 뛰어 놀고 있는데, 어릴 적 내 모습이 생각났다.
노란 국화꽃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마당 가득 국화를 심으셨고 그 꽃들이 새끼를 치고 치면서 어느새 우리 집 마당에는 국화꽃 향기가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지금의 내 모습처럼 국화꽃을 사이에 두고 가끔씩은 술래잡기 놀이도 같이 해 주시곤 하셨다. 바람이 불면 일렁이는 국화꽃들은 춤을 추는 듯 했고 찾아오는 꿀벌들은 꿀을 빨기에 바빴다.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국화꽃이 예쁘다고 칭찬했고 어머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행복해 하시곤 하셨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어린 시절을 국화꽃 향기를 맡으며 떠올려본다.
이유정(대구 달서구 이곡동)
♥ 해마다 성당서 열리는 꽃전시회에 출품
나는 언제부턴가 국화와 인연을 맺고 해마다 국화를 가꾸고 있다. 처음에는 취미로 키웠는데 7년 전부터는 국화 가꾸는 기술을 꽃 농원에서 배워 제법 솜씨가 늘었다.
그렇게 가꾼 국화를 해마다 성당에서 열리는 국화 전시회에 출품한다. 출품한 국화를 품평도 받고 판매도 해서 이익금은 지역 불우이웃 돕기에 쓰인다.
성당에서는 봄에 국화모종을 분양해서 각 가정에서 가꾼 국화를 가을에 전시하는데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국화를 가꾸게 되었고 그 수가 늘어 국화 전시회에 다양한 국화가 전시된다. 집에서 정성을 들여 키울 때는 내가 제일 잘 키웠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시회에 나가보면 나보다 늦게 국화 가꾸기 시작한 사람이 더 잘 키워 나온다.
이제 국화 가꾸기는 나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때마다 밥을 먹듯이 국화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영양제도 주고, 가을에 보다 곱고 튼실한 국화를 보기 위해 온갖 정성을 들인다. 힘든 것을 생각하면 다시는 국화를 안 가꾼다고 했다가도 국화가 봉오리를 터트리며 꽃이 피기 시작하면 힘들었던 때는 다 잊어버린다.
국화 전시회에 가서 다른 사람이 가꾼 국화를 보면 더 예뻐 보이고, 내가 가꾼 국화가 팔려 나갈 때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도 든다. 불우이웃돕기 기금을 마련하기위해 국화 전시회를 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국화를 구입해 가는 걸 보면 마음이 국화꽃 닮은 것 같아 뿌듯하고 더 많은 복을 받게 되라고 기도하게 된다.
내년에는 대상에 도전하기 위해 미리 준비를 해서 국화를 가꿔 볼 생각이다.
함종순(김천시 개령면)
♥국화꽃다발로 엄마에게 프러포즈한 아빠
나는 국화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년 엄마는 국화꽃 필 무렵쯤 항상 꽃시장에 들러 아직 덜 핀 국화를 사서 화단에 옮겨 심으시거나, 난간에 화분을 예쁘게 줄지어 놓으셨다. 그래서 가을이면 늘 만발한 국화꽃 향기가 내 코를 자극한다.
엄마는 물을 줄때도 즐겁게 콧노래를 흥얼거리시면서, "여기 와서 향기 좀 맡아봐라. 얼마나 좋으니?" 라고 하시면 나는 "뭐, 잘 모르겠는데"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자세히 표현은 못하지만 분명 색다른 향기가 있다.
하루는 엄마에게 왜 이렇게 국화꽃을 좋아하는지 물어보았다. 결혼 전 아빠가 노란 국화를 신문지에 대충 말아서 "국화꽃 같은 사람이 되어 줄 테니, 나와 결혼해 주겠소?"라고 고백했다고 말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나는 피식 웃었다.
여러 장의 꽃잎으로 속이 꽉 찬 모습이 우리 엄마를 꼭 빼닮은 노란 국화를 올해는 내가 직접 사서 마당에 내놓으니, 엄마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으셨는지 꽃 곁에서 향기에 취해 몇 번이나 코와 눈을 마주했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도 여자란 걸 떠올리게 되었다. 국화를 사랑하는 우리 엄마를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국화가 좋아졌다.
강민정(대구 남구 봉덕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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