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로 들여다본 톨스토이 인생관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그는 '부활' '전쟁과 평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비롯해 90여권의 책을 남겼다. 그 많은 책을 모두 읽기는 벅차다. 또 그 책을 다 읽는다고 해서 톨스토이의 삶을 알 수도 없다. 그렇다고 그의 전기를 읽자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문학가였던 톨스토이,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이 책의 지은이 석영중 교수에 따르면 '소설을 통해 톨스토이를 알기에는 안나 카레니나가 제격'이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각 부분과 등장인물을 통해 대체 '톨스토이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았는지'를 짚어간다. 작품을 통해 작가를 들여다보는 해설서인 셈이다.
지은이 석영중은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톨스토이와 러시아 문학 등을 전공했다. 이 책을 읽다가 '대체 이렇게 깊이 있고 재미있게, 또 고급 문체로 책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해 지은이 소개를 다시 살펴보기도 했다.
지은이는 '톨스토이는 어째서 굳이 안나 카레니나를 죽였을까' 라고 묻고 있다. 이 질문에 대답하자면 톨스토이의 인생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불륜에 관한 소설이다. 고위층 사모님으로 부족할 게 없는 안나가 젊은 남자 브론스키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남편도 자식도 모두 버리고 애정 행각을 펼친다. 그러나 이혼도 새 삶도 뜻대로 풀리지 않자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사회적으로 불륜은 나쁘다. 그러나 불륜 좀 저질렀다고 그렇게 끔찍하게 죽을 필요(작가 톨스토이가 안나를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바로 여기서 톨스토이의 중년 이후 세계관이 드러난다. 톨스토이가 여주인공 안나를 죽이는 것은 단순히 '불륜에 대한 응징'이 아니다. 톨스토이는 나쁜 사랑뿐만 아니라, 나쁜 생각, 나쁜 결혼, 나쁜 공간, 나쁜 예술, 나쁜 음식 등 나쁜 모든 것을 혐오했다. 심지어 책을 팔아 막대한 돈을 벌었던 그는 그렇게 벌어들인 돈까지 나쁘다고 생각했다.
톨스토이는 여자 주인공 안나를 죽임으로써 당시 러시아 상류층의 모든 것, 그러니까 그들의 사고방식, 습관, 생활태도, 사랑과 연애, 결혼, 예술관, 먹는 음식까지 깡그리 부정했다. 그는 '잘 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안나에 대한 '살해'는 톨스토이 자신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대한 살해 행위인 셈이다.
석영중 교수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중년의 위기를 겪은 후 '회심'을 계기로 '대문호'에서 '위대한 현자'로 거듭난다. 인생의 전환기를 겪으며 그는 인류에게 도덕적인 삶을 전수하기 위해 스스로 까발리고, 스스로 난도질했다. 그렇게 난도질하는 동안 '정화된 인간'으로 거듭난 게 아니라 완전히 찢겨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의 그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톨스토이는 예술가였지만 예술을 미워했고 귀족이었지만 귀족을 미워했다. 책을 90권이나 썼지만 말을 믿지 않았고, 책으로 돈을 벌었지만 그 돈을 혐오했다. 결혼해서 자식을 13명이나 낳았지만 결혼생활을 혐오했고, 아내를 싫어했다. 그는 결혼이란 목에 무거운 맷돌을 걸고 먼길을 걷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는 이혼하고 싶었지만 이혼할 수 없었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이혼의 어려움은 잘 나타나 있다. 이혼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게다가 이혼도 이혼의 보류도 나쁜 결혼을 해결하는 방법은 아니다. 톨스토이식으로 보자면 나쁜 결혼에는 대책이 없다. (톨스토이는 죽어서야 아내와 헤어질 수 있었다. 톨스토이가 먼저 죽고, 그의 아내가 뒤에 죽었는데, 아내는 남편 곁에 묻힐 수 없었다. 자식들이 끔찍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결혼생활이 끔찍했다면 그의 아내 소피아 베르스의 결혼생활 역시 끔찍했을 것이다.)
지은이 석영중 교수는 작품 '안나 카레니나'를 조목조목 인용하며, 톨스토이의 인생에 나타난 여러 가지 기표들을 흥미롭게 곱씹고 있다. 나쁜 사랑, 좋은 사랑, 나쁜 결혼, 좋은 결혼, 좋은 삶, 나쁜 삶, 종교, 윤리, 예술, 죽음 등에 관해. 291쪽, 1만3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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