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명문구단 스틸러스 명품도시 포항

입력 2009-11-11 10:50:44

2006년 여름 이구택 당시 포스코 회장이 갓 취임한 박승호 포항시장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포항 스틸러스 오너였던 이 회장은 스틸러스의 성적이 시원찮은데다 시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자 구단 매각 의사를 피력했다. "연간 120억 원을 쏟아붓는데도 기업 홍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비용의 절반만 투입하면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운용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를 만들면 글로벌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데 엄청난 효과가 있다"는 것이 이 회장의 주장. 유도인이자 열렬한 스포츠 팬인 박 시장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지원을 약속하면서 이 회장을 설득했고, 두 사람은 명문 구단을 만들자며 의기투합했다. 그 후 스틸러스의 성적표는 어떻게 됐을까.

지난 토요일 도쿄 하늘은 포항 찬가로 가득 찼다. 스틸러스는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강호 알 이티하드를 2대 1로 제압하고 아시아 최고 클럽에 등극했다. 500여 명의 포항시민들을 포함해 원정응원을 간 2천여 명의 한국팬들, 관중석을 꽉 메운 2만여 명의 재일교포들은 '포항' '포스코' '스틸러스'를 외치며 환호했다. 포항과 포스코, 스틸러스는 하나가 되면서 언론매체를 통해 일본 한국 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 아시아 전역에 이름을 분명히 알렸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홍보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이뿐 아니다. 스틸러스는 9월 K리그 컵대회(피스컵 코리아) 왕좌에 올랐고 K리그 정규리그 2위에 올라 올해 3관왕을 노리고 있다.

스틸러스의 변신은 '성적'보다 더 나은 '내용'으로 나타난다. 경기가 재미있다. 올해 홈에서 24경기 치르는 동안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성적이 비교적 괜찮았던 작년 45골을 넣었는데, 올해는 현재까지 94골을 넣었다. 지난 8월 제주전에서는 K리그 최고 득점 기록인 8대1의 대승을 거뒀다. 어웨이 경기 때도 스틸러스팬들이 대거 몰리는 이유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썰렁하던 스틸야드(홈경기장) 평균 관중은 2007년 5천 명에서 2008년 1만 명, 올해는 1만2천여 명으로 증가했다. 최근 들어서는 거의 만석(1만8천 석)을 이룬다.

스틸러스의 화려한 변화는 어떤 조직이든 운용하는 사람에 따라 무한의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이 가장 큰 요인이지만 내부적으론 걸출한 사장과 감독이 있었다. 작년 3월 부임한 김태만 사장은 '스틸러스웨이'(Steelers Way)라는 독특한 경영 방식을 도입했다. 승리에 연연하는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관중을 위한 재미있는 축구를 하자는 것. 그래서 데드타임(공이 정지돼 있는 시간)을 줄이는 데 노력했다. K리그 데드타임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보다 10분 정도 더 많다. 쓸데없는 파울과 시간 끌기를 위한 드러눕기 등이 지나치게 많아 경기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그는 재미없게 승점만 챙기는 것을 막기 위해 승리수당을 과감하게 없애고 매너와 공격에 주안점을 두고 수당을 배정했다. 그랬더니 화려한 공격축구가 나왔다. 통상 K리그 한 경기당 데드타임은 27분인 데 비해 올해 스틸러스와 수원의 개막경기 때는 14분에 불과했다. 상대팀은 이기고 있으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 스틸러스의 집요함에 질렸고 스틸러스의 득점은 계속됐다.

파리아스 감독은 무명의 선수들을 조련해 최고의 팀으로 만든 주역이다. 학연과 스타에 얽매이지 않고 적재적소에 선수를 기용하는 용병술, 특유의 친화력으로 2005년 감독 취임 이후 구단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고 그를 좋아하는 팬을 늘려 가고 있다.

외부에서 오늘의 스틸러스를 있게 한 주역은 박 시장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파리아스 감독은 '시장이 보러오는 경기는 지지 않는다'며 항상 시장을 찾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박 시장은 취임 이후 홈 경기가 있는 날은 거의 빠지지 않고 경기장을 찾는다. 초기에는 공무원들에게도 동원령을 내렸다. 당연히 불만이 쏟아졌지만 밀어붙였다. 그 공무원들 상당수가 요즘은 자발적으로 경기를 보러 간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리더들의 활약과 시민들 성원에 힘입어 스틸러스는 이제 명문구단으로 올라섰다. 다음은 포항이 이를 바탕으로 명품도시가 될 차례이다. 기대해보자.

최정암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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