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노을, 일상의 완충지대

입력 2009-11-09 14:33:00

퇴근길이다.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저녁노을이다. 도심의 스카이라인 위로 선홍색의 노을이 깔려 있다. 도시의 불빛이 하나 둘 켜지는 시각, 하늘에도 붉은 홍등이 내걸린다. 지상과 천상의 비무장지대에 붉은 노을이 화려하다. 늦가을의 노을은 핏빛이다. 대구에서 영천으로 이어지는 국도는 옆구리에 금호강을 끼고 달린다. 시인 박재삼은 '해질 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고 사랑의 비극과 생의 허무를 노래했다. 은빛 갈대가 우거진 강에 저녁노을이 깔리면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 된다.

날이 더워지면 고분군으로 저녁 마실을 가곤 했었다. 영남대 맞은편 언덕배기는 원삼국시대 압독국의 무덤군이다. 완만한 둔덕 잔디에 앉아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소박한 밥상을 차렸다. 그 자리는 사방이 탁 트인 공간이다. 팔공산과 경산의 성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 임당고분군 자리다. 초가을에 구름이라도 엷게 깔리는 날이면 구름과 노을이 기막힌 풍경을 연출한다. 노을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다르다. 영웅호걸의 죽음처럼 장엄할 때도 있지만, 가인의 추파처럼 요염할 적도 있다. 고분에 기대어 노을을 바라보노라면 까닭 없이 서럽기도 하고, 생이 연민스럽기도 했다.

바다의 노을은 장엄하다. 노을이 깔리는 수평선에 붉은 불기운을 내뿜으며 거대한 태양이 바다 너머로 지는 모습은 장엄하다 못해 괴기스럽다. 바다를 삼킨 괴물의 형상 같다. 한낮의 태양은 치열한 대립이지만, 지는 노을은 순응이다. 조금씩 바다로 몸을 숨기는 태양을 보노라면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나약함을 동시에 깨닫는다. 고대인들은 태양신을 숭배했다. 바위나 동굴벽에 태양의 모양을 그려 영원한 생명을 기원했다고 한다. 유한한 생을 사는 인간 앞에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은 얼마나 위대해 보였겠는가. 그들은 아마 하늘에 떠 있는 태양보다 바다로 떨어지는 태양을 보고 더 큰 두려움과 신비감을 느꼈으리라.

공기가 오염되면서 노을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하늘을 가린 고층 아파트와 빌딩은 떠오르는 해를 보러 동해로, 지는 해를 보러 서해로 달려가게 한다. 일상의 완충지대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낮과 밤이 오가는 경계지점에서 하루를, 혹은 나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가끔 우연히 만나는 노을을 보면서 욕심을 부려본다. 지는 노을처럼 생을 아름답게 마감할 수 있기를. 지나친 과욕인가. 곱게 나이 들고 싶다는 것은 많은 사람의 꿈이자 소망이다. 자식들에게 짐스런 존재로 남아 생을 연명하는 노인을 보노라면, 안쓰러움을 넘어 두려움을 느낀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늙어 가리니. 가을노을처럼 고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경희<대구 달서여성인력개발센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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