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고단한 하루

입력 2009-11-09 14:54:05

입추가 얼마전에 지난 것 같은데 벌써 입동이 지나가고 있다. 출근길에 보이는 풍경은 늦가을이 확실한데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는 것을 보니 어느새 겨울이 문턱에 와 있다. 이번 가을에는 꼭 유명한 산으로 단풍구경을 가자고 아내와 약속했는데 아직 못 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아내의 친한 친구가 뇌졸중으로 입원해 병문안을 다녀왔다. 병실에 들어선 아내가 친구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자 친구도 우는 것 같았다. 두 여인이 우는 것을 보니 괜히 마음이 우울해져 슬그머니 병실에서 나와 버렸다. 그날 밤 잠든 아내를 보자 어느 시인의 '고단'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아내가 내 손을 잡고 잠든 날이었습니다. 고단했던가 봅니다. 아내의 손에서 힘이 풀렸습니다. 훗날에는, 함부로 사는 내가 아내보다 먼저 세상의 만남과 손을 놓겠지만 힘이 풀리는 손을 느끼고 나니 그야말로 별세라는 게 이렇겠구나 싶었습니다.'

예전에 비해 성인병이 증가하고 의료환경이 발전해 치과에도 심근경색증과 협심증, 뇌경색, 뇌졸중 등의 심혈관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퇴원 후에 많이 치료를 받으러 온다. 보통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발치 등 출혈을 동반한 치과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지혈에 문제가 있어 담당 주치의에게 의뢰서를 보내 서로 상의해 치료를 하고 있다.

한 번은 60대 초반의 여자 환자가 치아가 흔들리고 아파서 발치하러 왔다. 특별한 전신적인 문제가 없어 발치를 하고 두 시간 동안 솜을 꼭 물고 있으라 하고 치료를 마쳤다. 다음날 환자분이 다시 왔는데 밤새도록 피가 나서 응급실에 가려다가 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발치한 부위가 지혈이 되지 않아 솜을 계속 물고 있었지만 한 바가지 정도 피가 나왔다고 한다. 이상하다 싶어 다시 자세히 물어보니 중풍을 예방하기 위해 아스피린을 먹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환자는 심혈관질환을 예방할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복용했고 예방적으로 먹는 약이라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아스피린을 장기간 복용하면 발치시 지혈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환자에게 약 복용을 중단할 것을 지시하고 다시 지혈해 마무리했지만 고단한 하루였다.

최근에는 영국 약물치료회보에서 뚜렷한 심장혈관질환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심혈관질환을 예방할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복용해서는 안 된다는 권고가 나왔다. 건강한 사람들이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을 둘러싸고 의학계에서는 현재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많은 분들이 중풍 등을 예방하기 위해 복용하고 있다. 늦가을에 쉽게 생각했던 치과치료가 고단해지지 않으려면 치과의사와 환자들이 서로에게 시시콜콜한 것까지 물어보고 이야기하는 습관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장성용 민들레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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