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불과 2주 앞둔 1944년 5월 하순. 영국군 최고사령관 버나드 몽고메리 원수가 갑자기 지브롤터와 알제리에 나타났다. 연합군의 상륙 지점을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독일 정보부는 이 같은 몽고메리의 행보가 연합군 상륙 지점이 프랑스의 대서양 해안이 아닌 이태리 남부 해안임을 암시하는 징후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독일은 영불 해안에 배치된 방어 부대를 대거 이태리 남부 해안으로 이동시켰다.
이는 결정적 오판이었다. 지브롤터에서 목격된 몽고메리 원수는 메이릭 클리프톤-제임스라는 연극배우였고, '가짜' 몽고메리의 지브롤터 방문은 독일의 방어 병력 분산을 위한 영국의 속임수였다. 이 작전을 위해 진짜 몽고메리 원수는 메이릭을 만나 장군 군복을 직접 수여하기도 했다. 메이릭의 연기가 얼마나 그럴듯했는지 표정은 물론 음성, 웃음소리, 행동, 습관까지 몽고메리와 똑같았다. 그래서 영국군과 미군은 물론 과거에 몽고메리를 만난 적이 있는 정치인과 언론인까지 속아 넘어갔다.
이처럼 군사적 또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역(代役)을 활용한 예는 이외에도 많다. 암살에 대해 극도의 공포감을 갖고 있었던 스탈린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가케무샤(影武者'그림자전사) 4명을 두고 대중연설은 물론 방문자 면담까지 시켰다. 가짜 스탈린의 한 사람인 펠릭스 다다예프(82)는 지난 4월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17세 때인 1943년부터 스탈린 대역을 해왔으며 모스크바 붉은 광장 단상에 서서 퍼레이드를 사열하는 것은 물론 직접 손님을 맞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이 밖에 집권 이후 무려 630여 차례나 암살 시도가 있었던 쿠바의 카스트로, 리비아의 카다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안전을 위해 다수의 대역을 썼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8월 북한에 억류된 여기자 2명의 석방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만난 김정일은 가짜라는 주장이 또 나왔다.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인 시게무라 도미시쓰 와세다대 교수의 말이다. 그의 주장의 골자는 김정일은 2003년 당뇨병으로 이미 사망했으며 지금의 김정일은 대역이라는 것. 이에 대해 미확인 소문이라는 반론이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가짜 김정일 얘기가 끊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김정일 이후의 북한이 어디로 갈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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