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져 가을도 이제 그 깊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머플러나 트렌치 코트가 어울리는 계절, 어느새 거리의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어 하나 둘 잎을 떨어뜨리고 있다. 차가운 바람에 마른 잎새들이 흩날려 거리를 맴돌면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라는 짐작에 다시 한 번 자연의 순환을 골똘히 생각해본다.
이런 날 코트 깃을 세우고 거리를 거닐다보면 꼭 생각나는 음악이 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뒷모습에 살포시 얹히는 주제가마냥…. 끊길듯 끊기지 않고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그 멜로디는 바로 브람스의 교향곡 3번 F장조 작품 90의 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Poco allegretto)다.
이 장면은 영화 때문에라도 내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유명한 프랑스 여성작가 프랑소아 사강(Francoise Sagan)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Aimez-vous Brahms?)에 나오는 테마음악이다. 영화 속에 삽입된 클래식 멜로디들 대부분이 영화의 장면을 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경우가 많지만 이 곡은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이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이면 브람스 교향곡을 듣고 싶게 만든다.
1833년 5월 7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1897년 4월 3일 비엔나에서 세상을 뜬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는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다.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등도 모두 위대한 작곡가지만 브람스는 한스 폰 뷜로가 얘기했듯 독일음악에서의 '3B' -요한 세바스찬 바흐, 루드비히 반 베토벤, 그리고 브람스-로 칭송받을 만큼 음악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바그너의 등장 이후 급변하는 독일 음악에서 브람스는 고전주의 음악의 전통적인 방식을 토대로 북독일적인 중후함에 화성법과 대위법이 잘 무장된 새로운 조성 스타일을 혼합시킨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내 당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브람스는 또한 매우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2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모두 자신이 초연했다고 한다. 1859년에 1번을, 그리고 1881년에 2번을 초연한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이 외에도 피아노 독주곡, 가곡, 종교 음악, 관현악 서곡, 그리고 다양한 실내악 작품 등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작곡한 브람스가 가장 독일적인 음악, 교향곡을 작곡한 것은 매우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평생 4개의 교향곡을 남긴 브람스의 교향곡 1번. 사람들은 이 작품을 '베토벤 교향곡 10번'이라고 부를 만큼 베토벤의 전통을 잘 이어받은 교향곡이다.
교향곡 1번 C단조 작품 68은 1876년 11월 4일 브람스의 나이 43세 때 독일 칼스루에에서 친구 펠릭스 오토 데소프의 지휘로 초연된 곡이다. 1번의 초고가 1854년 쓰기 시작되었다고 하니 22년이나 걸려 완성된 작품인 것이다.
가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람스의 교향곡은 독일 지휘자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가 명연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전혀 다른 해석방법의 번스타인과 비엔나 필하모닉의 연주 또한 브람스의 숨겨진 매력 속에 빠질 수 있는 감동을 준다. 가을에 듣는 브람스의 교향곡, 가을에 그 진정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음악임에 틀림없다.
음악칼럼니스트·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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