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근에 따라 다른 이미지…착시와 모순의 미학

입력 2009-10-30 16:12:23

조각가 박선기 초대전, 내달 3일부터 갤러리 분도

박선기 작
박선기 작 '핀휠'
박선기 작
박선기 작 '포인트 오브 뷰'

갤러리 분도는 11월 3일부터 12월 5일까지 조각가 박선기(44) 초대전을 연다. 중앙대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이탈리아의 밀라노 국립미술대를 졸업한 박선기는 설치 조각 작업으로 많은 전시와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숯과 돌을 이용한 거대한 설치 작품부터 부조 형식의 평면 작업까지 아우르는 작가만의 작업 방식은 이미 '박선기 스타일'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박선기는 작품에서 묘사하는 대상부터 남 다르다. 인물이나 사건, 관념 대신 지금껏 주변부에 머물던 소재, 가령 계단이나 기둥, 의식주 소모품 등을 다룬다. 어찌 보면 지극히 낯익은 대상들을 작가는 나름의 방법, 즉 착시와 모순이라는 해법으로 풀어낸다. 구체적인 작업 방법으로 들어가면, 가느다란 줄에 매단 숯덩이와 입체처럼 보이는 부조로 나눌 수 있다. 숯덩이 작업부터 살펴보자. 멀리서 보면 견고한 계단과 탁자처럼 보이는 대상은 가까이에서 보면 극히 불안정한 숯덩이의 집합체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작은 숯 조각들은 계단이나 거대한 원, 또는 탁자에서 막 떨어져 나와 금세 무너질 것처럼 불안한 상태를 연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본다면, 작은 조각들이 구체적인 형상을 띠기 위해 모여든다고 볼 수도 있을 터이다. 바로 이런 상황들 속에서 관객은 착시와 모순의 즐거움을 맛 본다.

입체처럼 보이는 부조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놓으면 실제 이것이 부조인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멀쩡한 입체를 옆에서 납작하게 눌러버린 듯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만든 테이블과 의자, 과일 접시, 연필통 등은 본래보다 더 원근감과 양감이 살아난다. 입체보다 더 입체같은 부조. 작가는 이들 부조 작품의 이름을 '시점'(point of view)이라고 붙였다.

갤러리 분도의 윤규홍 아트 디렉터는 "하나의 덩어리로 된 조각들의 패턴, 혹은 원근법의 유희로 재현된 다차원적인 작업은 예컨대 앉을 수 없는 의자, 오를 수 없는 계단, 들고 다닐 수 없는 가방처럼 풍부한 양감을 통해 사용가치를 표상하면서도 그것을 박탈한 상태로 만든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작가가 추구하는 결핍이나 모순, 혹은 해체는 좀 더 충만한 논리로 이루어진 미적 질서를 구축하는 방법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저마다 품은 이미지의 가장 순수한 지점을 향하도록 하는 결정체"라고 평했다.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현재 이탈리아와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쌓은 작가에게 이번 갤러리 분도의 초대 기획전은 금의환향이라는 의미도 갖게 된다. 이번 전시에는 대형 설치를 비롯한 10여 점의 조각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053)426-5615.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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