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대둔산 단풍 산행기

입력 2009-10-29 14:15:04

칠성'왕관 바위 '파노라마' 낙조대서 바라본 서해 일몰 장관

단풍이 아름답다고요? 사실 단풍은 나무가 인간에게 베풀기 위한 치장이 아니다. 황홀한 가을 연서(戀書)로 여겨지는 낙엽 그 자체는 화학물질이 빚어낸 색소작용이요, 휴지(休止)에 접어들기 위한 '버림'의 과정일 뿐이다. 여기에 사람들은 낭만, 허무를 이야기하고 색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수목의 배설인가, 계절의 성장(盛裝)인가. 자연과 인간의 영원한 동상이몽의 해답을 찾아 대둔산(大芚山'878m)으로 떠났다.

#'한국 8경' 금강구름다리

어릴 적 사회과부도에 단골로 등장하던 지역 명물들이 있다. 40대라면 기억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장항제련소, 금산위성통신지구국 그리고 대둔산 구름다리. 요즘으로 치자면 지역의 랜드마크였던 셈.

대둔산 구름다리의 정식 이름은 금강구름다리. 총길이 50m, 어른들 70걸음 내외. 지금은 청량산, 월출산, 강천산의 구름다리에 밀려 뒷자리로 밀려나 있지만 아직도 '한국 8경'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맏형 노릇을 하고 있다.

단풍이 막 남하 채비를 서두를 무렵 취재팀은 금남정맥의 용마루 대둔산을 찾았다. 논산, 금산, 완주 충남, 전북 3개 시군에 경계를 둔 중부권 산악의 중심이다. 수락리~마천대 고개는 옛날에 충청과 호남을 연결하는 관문. 빼어난 경관과 교통입지를 갖춘 덕에 일찍부터 중부지역 명산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들머리인 수락리로 접어들면서 맨 먼저 빨치산토벌기념탑이 취재팀을 맞았다. 대둔산은 논산, 완주와 공주, 대전을 연결하는 빨치산들의 거점. 교전 횟수 410회. 험한 바위산을 요새 삼아 5년 동안 동족끼리 총을 겨누었다.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은 우리의 잣대. 자연은 인간사에 간섭하지 않는다. 당시의 비극과 무관하게 단풍은 온산을 원색으로 수놓았다. 그때도 그랬을 것이다. 서어나무 잎새를 은폐삼아 소년 빨치산은 보초를 섰고, 갓 부임한 경찰은 가문비 수풀 뒤에 숨어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옛 포연 흔적을 따라 취재팀은 군지골을 오른다. 군지골은 수락리의 중심. 호젓한 숲길과 폭포, 거친 협곡들이 조화롭게 배치돼 수락골 최고의 비경지대로 통한다. 협곡 단애(斷崖)에서 내려다보는 가을 산 정취는 오색 융단 위를 나는 듯 감미롭다.

#'하늘과 맞닿은 마천대' 오르면 조망 으뜸

1시간 반쯤 올랐을까 최고봉인 마천대(摩天臺)가 성벽처럼 앞을 가로막았다. 원효 대사가 '하늘과 맞닿은 곳'이라는 뜻으로 이 이름을 붙였다. 최고봉답게 멋진 조망을 자랑한다. 북쪽으로 계룡산, 천등산부터 멀리 지리산 천왕봉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연무가 걷힌 날이면 멀리 서해 변산반도까지 시야가 펼쳐진다고 한다. 원경(遠景) 못지않게 근경(近景)도 빼어나다. 정상능선을 따라 칠성바위, 왕관바위, 낙조대가 파노라마를 이루며 '호남의 소금강' 위용을 뽐낸다.

해발 850m에 위치한 낙조대는 일몰의 명소. 맑은 날 노을을 뿌리며 펼쳐지는 서해 일몰은 우주와 대자연이 조응하는 감동을 맛볼 수 있다. 휴일, 단풍철 시즌이 겹친 대둔산엔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구름다리 두 곳 모두 교행이 금지되고 일방통행으로 바뀌었다. 인파에 시달린 관광객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질 무렵 어디서 경쾌한 하모니카 선율이 귀를 간지른다. 한 50대 남자가 등산로 옆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있다. 이 멋진 선율에 등산객들은 잠시 귀를 열어 짜증을 달랜다. '대둔산 하모니카 아저씨'는 이미 근방에서 알아주는 유명인사. 관광객들이 말없이 놓고 간 음료수며 과일에서 그분의 향기를 느낀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 삼선'금강구름다리. 삼선계단의 경사각은 무려 경사 50도. 몇몇 관광객들이 아래를 보지 말라는 경고를 깜빡하고 밑을 내려 보다 오금이 저려 오도 가도 못하고 소란을 피우곤 한다. 이럴 땐 아예 위만 보고 오르는 게 상책이다.

구름다리를 살짝 벗어나면 원효대사가 경치에 매료돼 3일을 머물렀다는 동심바위가 나타난다. 일반인이 보기엔 그저 평범한 바위인데 고승과의 견해차이(?)에 적잖이 당황스럽다.

#산자락마다 임란'동학전쟁'6'25 상흔 깃들어

임란 때 격전지였던 배티재를 멀리 굽어보며 하산 길을 재촉한다. 배티재는 권율장군이 군사 1천500명으로 2만의 왜군을 격파한 곳. 임란 최초 승리를 거둔 내륙전투로 기록됐다.

집단시설지구 입구엔 동학농민군항전비가 눈길을 끈다. 동학농민전쟁 당시 일본군에 맞서 죽창으로 항전하다 산화한 농민군을 기리는 호국의 현장이다. 그러고 보니 이 산자락을 따라 임란에서 동학농민전쟁, 6'25전쟁에 이르는 역사적 아픔이 층층이 서려있다. 의병들의 병장기(兵仗器)소리, 동학농민군의 함성, 빨치산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사에 언제나 침묵한다. 계곡은 포연 속에서도 물살을 내렸고, 단풍은 교전(交戰)의 소란 속에서도 채도(彩度)를 높였다. 단풍은 안토사이안과 카로티노이드 색소에 의한 화학작용일 뿐 애당초 인간과 교감 같은 건 없었다.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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