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책 읽기]김신명숙의 선택(김신명숙 /이프)

입력 2009-10-29 14:21:44

남성과 다름 인정하면서 새로운 관계 만들어가야

'김신명숙의 선택'을 읽었다.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 등의 도전적인 책을 쓴 김신명숙이 저자이다. 저자가 '보통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교감할 수 있는 쉬운 페미니즘 입문서'를 쓰겠다며 작심하고 쓴 책이란다. 방송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편지나 전화로 상담 들어온 내용을 소개하고 그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늘 우울하고 불안해했던 버지니아 울프는 '1년에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물쇠를 채울 수 있는 방 하나'가 필요하다고 절규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 무척 예민했다. 중산층 여성이었지만, 그 시대의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과 스스로 삶을 꾸릴 수 있는 생활의 방도는 없었기에 그는 더 불행했다. 여성계의 오랜 노력으로 폐지되었지만, 호주제가 남아있던 2007년까지만 해도 이혼한 여성이 아이를 키우고 있어도 그 아이와 엄마의 관계는 모자관계가 아니라 동거인 관계에 불과했다. 엄마는 스스로의 자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편을 통해서만, 즉 남자의 아내로서만 아이와 모자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진짜 뿌리는 아버지뿐이었기에.

지금까지 여성은 몸과 정신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몸으로만 이야기되어 왔다고 하면서 저자는 이런 권고를 하기도 한다. 온 몸을 비추는 전신 거울이 있다면 그 앞에 조용히 앉아 전체 형상을 한꺼번에 응시해 보라고. 그러면서 '이 몸을 가진 나는 누구인가? 나의 꿈, 가치, 욕망은 무엇인가? 나의 정신과 영혼은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 있는가?'라고 물어보라고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틈엔가 가부장제에 길들여지지 않은 '나쁜 여자'가 거울 속에서 웃고 있을 거라고.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사랑을 위한 결혼은 산업혁명 이후 시작된 산업혁명의 발명품"이라고 했다. 불과 100여년 전만 해도 혼인은 두 집안의 사회경제적 결합이었고, 당사자 사이의 감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서구에서도 18세기 말 이전만 하더라도 사랑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지금처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앤서니 기든스는 불평등하게 작동하는 낭만적 사랑에 대비해 '합류적 사랑'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물줄기가 하나로 만나 합쳐지듯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동등하게 만나 서로 협상하면서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사랑이라는 뜻이다. 기든스는 이런 사랑이 '일상생활의 민주화'를 가져올 수 있고, 전체사회의 민주주의 확산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독신가정, 비혼여성, 동성애 등 사랑과 결혼의 전통적인 형태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할 것이다. 비정상성으로 간주하고 정상성을 권유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인정하고, 제도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보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책의 말미에는 '남자에게'라는 제목으로 남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이 들어 있다. '여자도 군대 가라'는 주장과 관련해 여자도 군대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 남자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듯이 여자도 군대에 갈 수 있다며, 남녀 모두 군복무나 사회복무 중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한다. 모든 논의가 가능하며, 상상력은 풍부할수록 좋을 거라는 말도 덧붙인다. 페미니즘이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사회의 재편성이라며. '알파 걸'의 저자 댄 킨들러(하버드대 아동심리학 교수)는 알파 걸의 출현에 불안해하는 남성들을 향해 앞으로 남자들은 스트레스도 덜 받고 장수할 수 있으며 미처 개발하지 못했던 다른 면들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페미니스트는 사랑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면서 부딪치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명쾌한 분석과 해법, 그리고 남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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