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생활의 달인

입력 2009-10-26 16:46:26

며칠 전에 읽은 책에 의하면 하루 3시간씩 꾸준하게 일만(一萬) 시간을 투자하면 어떤 분야에서든지 달인이 된다고 한다. 날짜로 계산하니 9년이 좀 더 넘는 시간이다. 생각보다 긴 시간이고 실제로 어떤 일에 매일 3시간씩 투자하여 10년을 노력한다면 적어도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사가 된 지 25년이 되었고, 내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10여개의 내과 분과 중에서도 소화기 내과를 전공한 지는 어언 20년이 다 되어간다. 부친 또한 소화기 분야의 내과 의사여서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배워 온 것을 합치면 시간상으로도 거의 생활의 달인이 된다 하겠다. 실제로 20여 년 동안 내시경을 하다 보니 몇 가지 터득한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보통 사람 얼굴에 그 사람 인생의 모든 흔적이 있다고 하듯이 마찬가지로 내시경으로 환자의 위장 상태를 보면 이 환자가 지금껏 식생활을 어떻게 해 왔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술, 담배로 인해 거친 얼굴 피부를 가진 사람은 위 내시경 소견도 그 사람의 얼굴 피부 상태와 똑같이 거칠고 염증이 많이 보이며,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위 점막이 강한 자극으로 인해 닳아서 대부분 얇아져 있다. 그리고 성격이 예민하고 꼼꼼한 사람은 대장도 그 사람의 성격처럼 조그만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여 복통과 배변에 이상을 보이는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인 경우가 많다. 이렇듯 이제는 환자의 얼굴을 보고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눠보면 검사 없이도 위장관 상태를 대충 예측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고, 내시경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자신이 있는 '생활의 달인'의 경지에 올라서 나름대로 소화기 내과 교수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 많으신 한 할머니 환자의 등장으로 자부심에 작은 금이 가는 일이 생겼다. 그 환자는 대장 내시경을 받으러 왔고 나는 안전하게 내시경을 열심히 해드렸다. 받아본 환자들은 다 이해하겠지만 대장 내시경을 하려면 대장 내로 공기를 집어넣어야 하고, 공기가 팽창하면서 변의를 일으키게 된다. 대장 안은 깨끗하게 관장돼 있어 나올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마치 대변을 보고 싶은 것처럼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가상의 변의를 끝까지 잘 참아낸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모든 기능이 약해지듯 항문 괄약근을 단단히 죌 수가 없다. 그 할머니 환자는 내시경 중 팽창된 대장이 힘들었는지 참지 못하고 몇 번이나 뱃속의 가스를 배출했다. 그 냄새라니. 무사히 대장 내시경을 마치고 일어나면서 아래쪽에 있는 나를 안 됐다는 듯이 보고 하시는 말씀. "아이고, 교수님! 이런 거 하려고 의사 되셨어?" 달인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김 성 국 경북대병원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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