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100년 전 오늘,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입력 2009-10-26 09:32:25

100년 전 오늘, 중국 하얼빈 역에서 총성이 울렸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이다. 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이며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을까.

■20세기 초 가장 충격적인 사건

이토는 당시 동서양에 가장 잘 알려진 일본 정치가였다. 그 총성은 일본을 경악하게 했고 아시아와 세계를 진동시켰다. 20세기 초엽 러일전쟁과 함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세계의 눈은 안 의사가 조사와 재판을 받던 여순 감옥에 집중되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비(非)서구 지역에서 유일하게 근대국가 건설에 성공한 나라다. 그 중심에는 이토가 있었다. 총리를 4번 역임하고 헌법과 근대 천황제를 만들었다. 이토가 근대 국가 일본의 건설자로 평가받는 이유다.

안 의사는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독립운동가이다. 두 사람은 자국에서는 가장 위대한 인물들이나 상대 국가에서는 원흉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안 의사는 1907년 정미7조약의 강압적 체결을 계기로 이토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안 의사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바랐다. 서양세력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는 전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미7조약을 계기로 고종이 퇴위당하고 군대가 해산돼 대한제국은 국가로서의 골격이 해체되었다.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는 동아시아 식민지화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안 의사 역시 대한제국의 멸망을 동아시아 전체 파멸의 시작으로 인식했다.

안 의사는 형장에서 거사의 목적이었던 '동양평화'를 삼창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안 의사와 이토는 모두 동양평화라는 같은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이토의 동양평화는 자국 이익을 위해 대한제국과 중국을 식민지화하는 것이었으며, 안 의사의 동양평화는 삼국이 협력, 공존하는 것이었다.

안 의사는 이토를 사살함으로써 대한제국의 운명이 바뀌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안 의사는 동양평화라는 시대적 대의를 위해 총을 쏴야 했다.

이토는 '멍청이'(바보)라는 한마디를 남긴 채 사망했다고 한다. 일본어의 용례로는 이 말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지금까지는 이토가 안 의사를 향해 던진 말이라고 해석했다. 여기에는 안중근을 폄하하기 위한 수사(修辭)가 숨어 있다. 이미 대한제국의 운명은 기운 상황에서 대한제국에 대해 나름의 이해를 가지고 있는 이토 자신을 쏜 것은 '멍청이 같은 짓'이라는 의미다. 과연 그럴까.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고 그것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깨뜨림으로써 결국은 일본마저도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는 데 대한 자기 반성적 의미는 없었을까. 멍청이 같은 짓을 한 자신을 향한 독백은 아니었을까.

■민족의 각성을 위해 총을 쏘다

안 의사의 거사가 있은 지 10개월 후 대한제국은 식민지가 되었다. 거사가 대한제국의 운명을 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안 의사를 왜 가장 위대한 의사로 추앙하는가. 안중근은 당장의 독립보다도 더 크고 먼 미래를 보았다. 안중근에게는 이토에게 총을 쏜 순간부터 사형집행 때까지 줄곧 그를 감시한 일본인 간수가 있었다. 사형집행 1시간 전 안 의사는 그 간수에게 자기의 거사로 "역사의 흐름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동포의 애국심과 독립심을 자각하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말을 남겼다. 당시는 총 한발로 나라의 독립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안중근은 민족의 각성과 지식 습득이 진정한 독립을 가져올 것이며, 그것이 동양평화의 초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는 경구는 책갈피, 족자 등의 형태로 한국인이면 누구나 갖고 있다. 안 의사가 직접 만든 이 경구에는 손가락 하나가 잘린 손도장이 함께 찍혀있다. 잘려 나간 조국의 운명을 다시 잇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책을 읽고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무언의 외침으로 들린다. 책 읽기를 권하는 그의 유훈은 이토를 사살한, 의병 참모중장이라는 무인(武人) 안중근의 풍모와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다. '동포여! 떨쳐 일어나 왜적을 섬멸하라'는 호령이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사형집행 전 면회 온 두 동생에게도 학문에 종사할 것을 권했다. 이토를 향해 총을 쏜 것보다도 민족의 각성을 재촉하는 이 경구가 그의 진면목과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새롭게 각광받는 동양평화론

역사는 현재를 보는 창(窓)이다. 동시에 역사는 현재적 의미로 재해석된다. 일본에서는 안 의사를 이토를 살해한 테러리스트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거사가 한일합방을 촉진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이토 저격사건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상가로서의 그의 혜안과 가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일본은 새로운 국가적 침로(針路)를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서 찾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중일 삼국의 협력이 핵심이다. 안 의사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의 현대판이다. 삼국의 공존을 통한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오늘날 적지(敵地) 일본에서 살아나고 있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보게 되는 것이다. 안 의사의 정신과 사상이 의거 100년을 맞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명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성환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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