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홍보대사' 양혜승 vs '립스틱 짙게∼' 임주리

입력 2009-10-24 07:20:15

두 여자가수의 변신은 무죄, 도전은 계속된다 쭉∼

여가수의 변신은 무죄다. 새로운 모습을 요구하는 대중에게 신선함을 주고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적당한 타이밍에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좋다.

이달 초 만난 가수 양혜승과 임주리의 변신은 더더욱 무죄라고 할 것이다. 양씨는 미스코리아 출신이나 한때 114kg까지 살이 쪘다, 이젠 무려 50kg나 감량해 '자신의 몸에서 한 사람이 빠져나갔다'고 말한다. 그리고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가 되려다 가수가 된 임씨의 가수생활 중 겪은 변화무쌍함은 기자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화려한 싱글', '랑데뷰' 등의 히트곡에서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방실이, 빅마마와 함께 신세대 100kg가수였던 양씨와 '립스틱 짙고 바르고'로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맘을 살랑살랑거리게 만들었던 임씨를 함께 만나 2시간 정도 수다 떨듯 얘기를 나눴다.

양씨는 에너지가 넘치는 태양인 스타일의 여장부였고, 임씨는 내적으로 끼가 넘치며 타인을 편하게 해주는 배려형이라는. 둘의 이유있는 변신 속으로 잠시 소풍을 떠나보자.

◆'다이어트 홍보대사' 양혜승

양혜승은 먼저 나이 논란부터 시원하게 정리해줬다. 방송 나이가 75년생 토끼띠인데 실제 나이는 그보다 다섯 살이 더 많은 70년생이라고 밝혔다. 당시 가수활동을 한창 할 때는 바로 잡으려 해도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더러 가수활동을 좀 더 오래하기 위해 실제 나이를 밝히지 못했음을 사과했다.

실제 그는 에너지가 넘치는 스타일이었으며, 거침이 없었다. 그 어떤 어려움이 와도 정면으로 헤쳐나갈 것 같이 보였으며, 주변 사람을 리드하고 분위기를 '업(Up)'시키는 인간형이었다.

이러한 양씨의 변신에는 몸무게가 주요 이슈가 됐다. 그는 1989년 미스코리아 경기지역 대회에서 4위에 오를 정도로 한 몸매하는 아가씨였다. 당시 몸무게는 48kg.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무용을 해 몸의 유연성도 상당하단다. 학교도 계원예고와 서울예술전문대학 무용과를 졸업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은 타고난 건강체질이며, 원래 먹는 양은 많다는 것. 그러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삶의 의욕을 잃어면서 활동량이 줄어들었다. 이에 더해 밤에도 많이 먹고 하다보니 몸무게가 100kg을 넘어 114kg까지 늘어난 것.

그러다 타고난 끼와 노래실력을 바탕으로 그 몸을 유지한 채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1집 앨범 타이틀이 '100kg', 이후 '랑데뷰'와 '화려한 싱글'이라는 곡이 히트를 치면서 방실이, 버블 시스터즈, 빅마마의 뒤를 잇는 신세대 가창력있는 100kg 가수로 자리를 잡았다. 당시 방송에서 라이벌을 묻는 질문에는 '방실이 언니'라고 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양씨는 그 몸무게의 50kg 이상을 날려버렸다. 요요현상이 없는 다이어트로 '뚱뚱하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은 평범한 여인으로 되돌아온 것.

이제 그는 다이어트 홍보대사이자 박사다. 양씨는 1집 활동을 마무리하며 피나는 다이어트에 돌입했고, 몸무게를 반으로 줄이기를 위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는 처음엔 무작정 음식 섭취를 줄이고, 러닝머신 위를 달리며 2주 동안 7.5㎏을 빼기도 했다. 그러나 무리한 체중 감량은 건강에 도리어 나쁘고, 단기간에 몸무게를 감량하면 후유증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규칙적인 운동과 음식 조절로 살을 뺐다.

하루 40분씩 조깅을 했고, 오후 7시 이후 음식 섭취를 하지 않으니 한 달에 3~4㎏씩 감량효과가 났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아침 뷔페식을 5접시나 먹을 정도로 식성은 여전했지만 이젠 더 이상 살은 찌지 않는다고 했다. 식사량과 운동량의 균형이 맞춰진 셈.

양씨는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다.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고 잘 이해해주는 그 남자와 백년가약도 맺을 계획이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가수가 '남진'이라며, 평생 노래하며 인간미가 팍팍 묻어나는 가수로 남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그는 지난해 '깍지콩'이라는 곡으로 왕성하게 활동했으며, 내년에는 새 앨범을 들고 또 다른 변신을 할 예정이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 임주리

가수 임주리하면 먼저 떠오르는 곡, 불후의 히트곡 '립스틱 짙게 바르고'는 당시 센세이션한 제목의 곡과 가슴에 와닿는 가사로 40, 50대 중년 남성의 맘을 설레게 한 노래다.

원래 이 노래는 1987년에 지금은 원로가수인 김희갑씨의 집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만난 곡. 다른 가수를 주기 위해 만들어 피아노 건반 위에 두었던 곡,'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보게 된 것. 임씨는 노래가 너무 좋아 제가 한 번 불러보겠다고 했고, 이 노래를 들은 김희갑씨는 '히트 치겠다'는 필을 받고 이 곡을 그에게 선사했다.

사실 이 노래는 가수 이은하씨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란다. 인생은 그런게 아니겠나, 이런 일은 연예계에서 비일비재. 먼저 히트시키는 사람이 임자다.

임씨는 당시 이 노래에 얽힌 비화도 몇 가지 소개했다. 태평양화학에서 립스틱 매출이 급신장해 임씨에게 고맙다며 립스틱을 박스채로 줘 공연장에서 관객들에게 나눠줬다. 또 이 노래가 히트치기 전 화류계의 멋쟁이 오빠들이 먼저 이 노래를 부르고 다니기 시작하며 인기곡 반열에 올려놓은 뒤, 국민 히트곡이 됐다. '립스틱'은 또 뒷북 히트곡이기도 하다. 1987년에 발표되어 7년 뒤인 1994년에 크게 빛을 본 곡이었던 것.

그런 임주리는 마냥 늙지 않을 것 같지만 1957년생, 벌써 지천명(50세)의 나이를 넘어섰다. 본명은 임윤정, 아들을 키우는 평범한 엄마이기도 하고 이제 인생을 굽어볼 줄 아는 경륜있는 가수다.

다들 '립스틱…'만 얘기하지만 히트곡도 적잖다. '백만송이 장미', '가버린 사랑', '제2의 연인', '정말 좋겠네'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버지가 의사였던 임씨는 서울여자간호대학을 다니면서 간호사의 길을 준비했으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가수의 끼에 더 당겼나보다. 그는 대학 1학년 때부터 호텔 '리버사이드'에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불렀으며, 당시 가수 함중아가 임씨가 노래하는 것을 보고 음반을 내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그는 또 다른 히트곡 '백만송이 장미'에 대해선 "러시아곡을 '우리 고유의 정서'에 맞춰, 범세계적인 센스를 부여하고자 불렀던 곡인데, 그런 탓인지 미국, 중국, 일본에 공연을 가면 많이들 알고 계시고, 또 반응도 좋은 곡"이라고 설명했다

한창 활동하다 어느샌가 가수생활에 회의감이 밀려들기 시작했고, 언니가 살고 있는 미국 LA로 가버렸다. 3년 이상 미국에 살았던 것. 가수를 안 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립스틱…' 노래가 다시 한국에서 뜨고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역시 가수는 나의 길'이라며 귀국했다.

임씨는 실제 싱어 송 라이터이다. '끝이 보이지 않아 짧은 행복, 어디에서 어디까지 진실한가' 등 자신이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들을 가사에 담아내기도 한다.

그는 자신만의 음악관에 대해 "흔히 '트로트 가수'로서 저를 인식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제는 트로트니 발라드니 하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청중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달래줄 수 있는 곡을 그 나름에 맞는 스타일로 소화해내어 계속해서 새롭게 도전하고 싶다"며 "노래 내용도 천편일률적인 사랑 이야기보다는 인생 그 자체, 삶을 살아가는 고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소극장에서 삶과 사랑을 얘기하면서 제 노래를 들려주는 작고 소박한 콘서트를 하고 싶다"며 "또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며 분위기있는 디너쇼도 진행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글·사진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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