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청산행」/ 이기철

입력 2009-10-22 15:01:20

손 흔들고 떠나갈 미련은 없다

며칠째 청산에 와 발을 푸니

흐리던 산길이 잘 보인다

상수리 열매를 주우며 人家를 내려다 보고

쓰다 둔 편지 구절과 버린 칫솔을 생각한다

南方으로 가다 길을 놓치고

두어 번 허우적거리는 여울물

산 아래는 때까치들이 몰려와

모든 野性을 버리고 들 가운데 순결해진다

길을 가다가 자주 뒤를 돌아보게 하는

서른 번 다져 두고 서른 번 포기했던 관습들

서쪽 마을을 바라보면 나무들의 잔 숨결처럼

가늘게 흩어지는 저녁 연기가

한 가정의 고민의 양식으로 피어오르고

生木 울타리엔 들거미줄

맨살 비비는 돌들과 함께 누워

실로 이 세상을 앓아 보지 않은 것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

「청산행」 시편은 신「귀거래사」라고 명명하고 싶다. 5세기 무렵 도연명의 시대에도 벼슬을 버리고 현실에서 물러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 지금의 귀거래사도 전원 생활이다. 하지만 시인이 바라는 바는 다는 것이다. 시인의 꿈은 현실적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인간과 자연의 완전한 조화이겠다. 잘 배치된 세련된 목가적 언어들이 그러한 비현실을 더욱더 액자화시킨다. 하지만 청산행의 행간에 활짝 누워보고 싶은 것은 부박한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또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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