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11월. 문화부 음악 담당이던 기자는 조해녕 당시 대구시장을 만났다. 취임 100일을 맞아 대구의 문화 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의례적인 자리였다. 조 시장을 만나기 전 부서에서 논의를 했다. 뭔가 '작업'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국적인 행사 개최를 제의해보자는 결론이 내려졌고, '교향악 축제' '실내악 축제' '오페라 축제'가 거론됐다. 교향악 축제는 이미 서울이 선점했고, 실내악 축제는 다소 전문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 '오페라 축제' 개최 제의로 가닥을 잡았다. 마침 전국 최초의 오페라 하우스 개관이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때였다.
조 시장은 오페라 축제 개최 제의를 듣자마자 비용이 많이 든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대구의 여건을 들어 설득했다. '매년 각 대학에서 수백 명의 음악도가 배출되고, 시립 오페라단과 민간 오페라단이 매년 4, 5편의 오페라를 제작한다. 오페라 하우스 개관을 기념해 수도권과 호남의 오페라단을 초청하면 국내 오페라 축제가 된다. 대구의 자매결연도시인 이탈리아 밀라노, 불가리아 소피아,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시를 통해 오페라단을 초청하면 국제 오페라 축제도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한참을 듣던 조 시장은 '개최 고려'라고 긍정적인 답변을 했고, 이듬해 2월 대구시는 국제오페라축제 개최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2003년 10월 프레 국제오페라축제를 시작으로 2007년쯤에는 30억 원 규모의 행사로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7년이 흘러 올해도 어김없이 '2009 대구 국제오페라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제 많은 음악 애호가는 9, 10월이 되면 대구가 오페라의 도시로 바뀌는 것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처음보다 나아진 것이 별로 없다. 약간의 색다른 부대행사가 있지만 고만고만하다. 이유는 단 하나 행사비가 절대적으로 모자라기 때문이다. 시비는 국비 지원을 이유로 2004년 9억8천만 원을 정점으로 매년 줄어 올해는 6억 원이었다. 내년도 비슷한 수준으로 국'시비를 합한 12억 원대는 2007년 이후 계속 묶여 있다. 이래서는 내실 있는 축제를 할 수 없다. 국립 오페라단의 한 작품 제작비는 8억 원대다. 서울의 민간 오페라단도 한 작품 제작비가 4억, 5억 원은 기본이다. 12억 원은 오페라축제를 치르기에도 모자라는 금액이다. 대구 오페라축제가 어느 한순간 정체돼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축제 조직위도 마찬가지다. 예산이 모자라다 보니 아무런 비전이 없다. 매년 빠듯한 예산에 맞춰 행사 치르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구 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꿈을 찾아내야 한다. 기자는 그 꿈을 오페라 제작에서 찾았으면 한다. 오랫동안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대구의 상징작이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 개관 기념작인 '목화'와 국채보상운동을 주제로 한 '불의 혼'이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그해 잠깐 공연되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재공연을 시도하는 단체도 없고, 있다 해도 저작권이 걸림돌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페라 하우스가 제작해 저작권을 소유하는 것이다. 원천적인 저작권은 인정하되 일정 부분 가감,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뜻한다. 오페라는 몇 번의 공연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명작들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끊임없는 공연과 개작을 통해 가능했음을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발상도 아니다. 오페라 축제 때마다 이 작품을 공연할 단체를 선정해 지원하고, 전문가를 초청해 작품의 개선 방향을 논의해 만들어 나간다면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이다.
문제는 역시 비용이다. 국비 지원이나 기업의 후원이 있으면 좋겠지만, 어려우면 한 해 정도 축제를 거르거나 규모를 줄여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 덧붙여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전에 작품을 완성해 무대에 올리는 꿈도 꿔본다. 남은 시간은 크게 부족하지만 전력 투구하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세계의 손님을 초대해 대구의 모든 것을 담은 오페라를 공연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함께 같은 꿈을 꾸면, 꿈도 현실이 된다.
鄭知和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