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활의 고향의 맛]개떡

입력 2009-10-22 11:36:25

배 고파 안 먹을 수 없고, 먹으려니 맛이 없고…

개떡은 맛이 없다. 맛이 오죽 했으면 '떡'자 앞에 '개'자를 붙였을까. '개'자가 붙은 낱말 치고 맛이며 모양이며 행실까지 제대로 된 것이 별로 없다. 개판 개수작 개새끼 개살구 개망신 개헤엄 개백정 개나발 등등. 그러나 '개'자가 붙어 있어도 괜찮은 것도 더러 있다. 개장국 개미 개구리 개암 등등.

개떡은 보릿고개의 소산이다. 가을에 추수한 쌀은 농비와 학비를 위해 팔려 나가고 보리가 익기 전인 오월쯤 되면 쌀독이 밑바닥 긁는 소리를 낸다. '땟거리'가 떨어졌다고 굶을 수는 없는 노릇. 농촌에선 이맘때가 되면 나물과 잡곡으로 갱죽이나 '풀떼죽'을 쑤어 연명하곤 했다.

덜 익은 풋보리 베어와 구호 양곡으로

쌀은 물론 잡곡마저 떨어진 농가에서는 하는 수 없이 덜 익은 풋보리를 베어와 설핏 말렸다가 디딜방아에 찧어 긴급 구호양곡으로 충당했다. '방앗고'에서 퍼내는 풋보리는 살이 워낙 연하여 껍질 째 문드러진다. 이걸로 보리 풀죽을 쑤면 겉껍질의 '까시래기'들이 입천장을 찔러대 죽 한 그릇 비우는데도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풀죽 맛은 약간의 풋내가 나긴 하지만 주린 창자를 채워주는 역경 속의 기도와 같은 위로가 되었다.

뻐꾸기가 '뻐꾹 뻐꾹'하며 이산 저산에서 숨바꼭질을 시작하면 들판은 온통 황금물결로 출렁이고 보리는 고개를 빳빳하게 세운 변강쇠 자세로 익어간다. 보릿고개를 간신히 넘긴 농부는 잘 익은 보리에게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란다"라는 가을철 벼에게나 들려주던 교훈적인 말씀은 아예 하지 않는다.

보릿고개라는 큰 산을 넘어온 자만에 빠져 들은 체 만체 하고 바람 부는 대로 고개만 흔드는 것이 농촌의 오월 풍경이다.

농부의 마음은 즐겁기만 하다. 보리밥일망정 자녀들의 배를 곯게 하는 일은 없어졌기 때문이다. 바람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서 콩죽 같은 땀을 흘리며 타작을 마친 농부는 서둘러 보리가마니를 정미소로 싣고 간다. 아내도 흰 수건을 머리에 쓰고 종종걸음으로 지아비가 끄는 수레를 따라 간다. 손에는 양은다라이가 들려 있다. 개떡을 만들 보릿가루를 담을 통이다.

개떡은 맛이 없다. 우리 집 개떡도 맛이 없고 이웃집 것도 맛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배고픈 개에게 던져 주어도 먹을까 말까할 정도였다. 이유는 보릿가루는 쌀가루 보다 맛이 없는데다 집집마다 설탕을 대신하는 사카린을 거의 안 썼기 때문에 개떡은 사실 무맛에 가까웠다. 지금 생각하면 돈 몇 푼이면 사카린을 쉽게 살 수 있을 텐데 그걸 못하는 것이 농촌 현실이었다.

개떡이라고 모두 맛없는 것은 아니었다. 옆집 금융조합 황서기네 집에서 찐 개떡은 그 집 딸인 동창 여자아이가 더러 골목에 갖고 나온 걸 먹어보면 맛이 아주 좋았다. 떡이 우선 달싹한 데다 굵은 콩이 다문다문 박혀 있어 씹을수록 구수했다. 또래들은 맛있는 개떡 한 조각 얻어먹은 보은으로 숨바꼭질할 땐 술래를 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강변에 나가 자동차 놀이를 할 때도 얼굴이 그리 예쁘게 생기지도 않은 그 아이의 자동차를 맨 앞에 세워 달렸다.

보리쌀 소쿠리에 얹혀 있던 개떡

어머니가 없는 빈집을 지키다 보리쌀 소쿠리에 얹혀 있는 개떡을 끄집어내 먹을 것인지 안 먹을 것인지를 한참 고민한 적이 한두 번 아니다. 털어 놓고 말하지만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개떡 한 덩어리를 단번에 먹어치운 기억은 별로 없다.

만약 그 때 쓴 일기장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면 "유월 어느 날, 날씨 맑았다 흐림. 개떡을 먹다 닭장에 던져 버렸다. 나중에 커면 부엌에 사카린 단지를 준비해야겠다. 달지 않은 개떡은 정말 맛이 없다"고 쓴 어느 여름날의 기억을 쉽게 발견했을 것이다.

시방 나는 그날 닭장에 던져버린 그 개떡이 먹고 싶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개 같은 날의 오후'를 개떡을 씹으며 빈둥거리며 즐기고 싶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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