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에 10명도 안다니는데, 왜 철거 안하는지…"
1973년 대구 1호 신암육교가 등장했다. 그후 36년, 대구 도심 육교는 모두 52곳으로 늘었다. 속도 지상주의, 차량 중심 교통 정책이 빚어낸 결과다.
우후죽순 양산된 도심 육교는 보행자 중심 교통 문화가 뿌리내리면서 구시대 유물로 전락했다. 계단식으로 설계된 육교 대부분은 보행약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보행 기능을 상실한 오래된 육교는 철거 논란에 휩싸였고, 무턱대고 세운 육교는 도심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철거 안 하는 육교?
한 할머니가 육교를 힘겹게 오르고 있다. 동구 아양로(왕복 6차선) 신암육교(높이 4.5m). 계단을 오를 때마다 손으로 오른편 무릎을 짚는다. 세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육교를 내려올 때도 난간을 부여잡은 채 조심조심 걸음을 옮긴다. 할머니가 육교를 건너는 데 정확히 3분 6초가 걸렸다. 평균 횡단보도 통과속도가 40초임을 감안할 때 4배 이상 걸린 셈이다.
신암육교는 36년 전 신암1동 초교생들이 동대구초교로 통학하면서 주민 진정에 의해 세워졌다. 기존에 있던 횡단 보도는 없앴다. 그러나 현재 신암1동 초교생 대부분은 신암초교나 동부초교를 다니고 있다. 육교를 건널 필요가 없다. 등굣길(오전 7시 30∼8시 50분) 신암육교 이용도 조사 결과 신암육교를 통행하는 초교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학생들은 육교 50m 앞 횡단보도를 이용하고 있다. 특히 신암1·3동은 노인(60세이상) 인구 비중이 높아 육교 이용에 어려움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시 60세 이상 인구 비율이 13.3%인데 반해 신암1·3동은 각각 18.9%, 18.8%로 높게 나타났다.
이 때문에 신암3동 주민 2천여명은 지난해 9월 '육교가 오래돼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고, 육교 아래 무단횡단이 심해 철거가 필요하다'는 청원을 제출했고, 동구의회가 잠정 철거를 결정했다. 하지만 동구청은 철거는커녕 지난달 1천600만원을 들여 육교 도색 및 난관 보수작업을 마쳤다. 28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보수 인부들조차 '철거를 앞둔 육교에 색칠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고 했다.
◆잘못 세운 육교?
북구 검단육교에는 보행자가 없다. 좌우 50m 거리에 횡단보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육교는 13년 전 도롯가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세워졌다. 세대수가 갑작기 늘어 도로 반대편 초교에까지 아이들을 보내야 했지만 이제 아이들은 육교를 통할 필요가 없다. 아파트쪽 초교가 증축을 하면서 모든 학생을 수용할 수 있다. 현성원(부동산 중개업)씨는 "아무도 다니지 않는 육교"라며 "쓰임새라곤 광고판 다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수성구 고모역육교는 9억원을 들여 2003년에 세운 육교다. 그러나 7개월 만에 여객열차 고모역 정차가 중단돼 사실상 식물 육교로 전락했다. 게다가 2006년 9월에는 화물열차 운행마저 끊겨 육교가 완전히 쓸모없게 됐다. 7개월을 쓰려고 혈세 9억원을 낭비한 셈이다.
북구 동천육교는 흉물스러웠다. 찢겨나간 광고물이 덕지덕지 붙은 기둥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래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소화전, 거적 등이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다. 육교에도 종이컵, 과자 봉지, 담배꽁초 천지다. 1999년 8억여원의 돈을 들여 지었지만 양쪽 횡단보도가 가까워 통행이 드물다. 이곳 상인은 "육교를 걷는 사람은 한 시간에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며 "육교가 지저분하고 주정꾼까지 자주 횡포를 부려 이용객이 더 줄었다"고 말했다.
◆보행약자 외면하는 육교
동구 강촌육교는 지난해 탄생한 대구 첫 엘리베이터 육교다. 유모차를 끌거나 장바구니를 든 주부, 자전거를 탄 어린이, 관절염을 앓고 있는 할머니·할아버지 모두 육교 양끝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편하게 길을 건널 수 있다.
그러나 대구시내 52개 육교 가운데 엘리베이터 편의시설은 이곳이 유일하며 이동하기 편한 경사로를 갖춘 곳도 단 4군데에 불과한 실정. 나머지 47개 육교 전부가 계단식으로 설계돼 휠체어, 유모차, 자전거, 손수레가 오르내릴 수 없다. 주변 횡단보도로 돌아가거나 무단 횡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경사로도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 실제 칠곡3지구내 구암육교는 경사로 내리막길 사고가 잦아 '자전거 타기가 위험하다'는 안내문까지 붙어 있다. 울퉁불퉁 굴곡진 경사로를 따라 유모차를 끄는 주부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구청 관계자는 "경사로를 갖춘 육교는 계단식보다 규모가 커 도시미관을 해치고, 주변 상가 민원을 일으키기 마련"이라며 "이 때문에 시 외곽도로를 중심으로 경사식 육교가 설치돼 왔다"고 털어놨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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