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람쥐 몸집이 왜소해진 이유

입력 2009-10-21 15:19:34

시월, 담장 너머 바람소리 들리는 외곽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어제오늘의 느낌 하루가 다르다. 가을이 누렇게 익어간다. 나뭇잎 물들이던 벚나무 직박구리의 날개바람 빌려서라도 익은 이파리 하나씩 가지를 이탈시키고, 저 멀리 우두커니 섰던 굴참나무도 휴면을 촉진하려 느릿느릿 푸른 색깔을 밀치는 소리 하루가 다르게 또렷하다.

그런 산속에는 사람들이 떠들썩하다. 익어가는 가을의 구수한 노랫소리 듣는 것이 아니라 가을을 짓밟는 소리 들춰내고 있다. 샛길도 모자라서 이리저리 산의 내장 헤쳐 다니는 모습 투명하다. 무더운 여름철 산림욕을 즐기는 사람보다, 햇볕 나른한 봄날 오후 꽃구경하는 사람보다도, 이 가을에 수많은 발걸음 도토리 찾아 숨바꼭질하듯 산속을 헤매고 있으니 말이다.

도토리는 둥근형'계란형'타원형 따위의 모양에다 크기도 다양하다. 껍질은 단단하고 매끄러워 밤알과도 같다. 그 속에 하나의 과육인 커다란 씨알 하나 들어 있다. 이러한 과육은 총포(總苞)가 변형된 깍정이(穀斗)에 덮여 있다. 도토리는 아래쪽 또는 중간 정도까지 깍정이를 에워싸고 있어 적당히 익으면 스스로 만류인력의 법칙을 따른다. 도토리를 놓고 상수리나무의 열매를 상수리로, 졸참나무의 열매를 굴밤이라고도 부른다. 타닌 성분을 제거하면 식용으로 좋겠지만 분명 다람쥐가 좋아하고 동면에 필수적인 먹잇감이다.

이때쯤 굴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를 비롯한 참나무류 6형제는 비탈 붙잡고 통증 앓아가며 익힌 도토리를 지면에 흘려본다. 그렇지만 키재기 해볼 겨를도 없다. 금년같이 극심하게 가물던 봄날 소나무가 그렇게 죽어간 마당에 세대교체라도 해 볼까 해서 지하에서 떡잎 에워싸고 새싹 피워 올리든 아니면 생태계의 순환을 돕고자 힘겹게 익힌 토실토실한 도토리 다람쥐 먹이 되라며 또르르 굴러본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스락바스락 발걸음 옮기는 소리 들려온다. 정도가 고만고만한 도시사람끼리 다투어 익은 도토리를 줍고 있다. 낙엽 뒤편에도 알알이 숨었을까 마구 뒤척여 모조리 주워가니 그네들은 무얼 먹고 살아가며, 푸른 새싹은 또 어떻게 피워 올리란 말인가.

우리가 산속을 거닐 때 낙엽과 흙을 파헤쳐 헝클어진 산의 모습을 자주 본다. 멧돼지조차 약육강식 잊은 지 오래다. 주둥이로 땅을 뒤적여 먹이를 찾은 흔적이 흔하고, 농경지의 습격과 주택지까지 빈번하게 출몰하는 것은 자신들의 먹이를 앗아간 사람들을 향한 원망의 발걸음이다. 이건 분명 생태계에도 변화의 위협인 것 같다.

산마루에서 또다시 외치는 함성, 야호 소리도 들린다. 야호 함성 때문에 야생동물은 자유로운 생활과 포식의 여유가 없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어느 산모퉁이에서 경계의 눈알 굴리면서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금년 봄엔 유난히도 많은 소나무가 말라죽었다. 이 가을에도 활엽수마저 잎이 바짝 타들어간다. 여름에 잠깐 쉬었던 가뭄 끊이지 않는다. 일기예보에 강우량이 60㎜ 정도이면 5㎜ 정도로 받아들이고, 5㎜ 정도의 예보라면 아예 기대치를 떨쳐야 마땅한 이곳에도 지구온난화 현상은 무척 발빠르다.

대자연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참나무류 허리춤에 돌덩이로 상처 내는 일은 거의 사라져 다행이지만 그래도 다람쥐의 몸집은 예전에 비하여 무척 왜소한 것 같다. 사람들은 종자 한 알, 나무와 풀 한 포기, 다람쥐 한 마리에게도 삭막하게 등 돌리고 있다. 녹색성장이 멈칫거린다. 생각의 나무가 도토리 한 알 정수리에 떨어뜨린다. 톡, 그들의 먹잇감 사람들이 구별하라고….

권영시 대구 앞산공원관리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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