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걷고 싶은 도시 만들자]…①보행권 빼앗긴 인도

입력 2009-10-21 09:47:06

파이고 깨지고, 차량·노점상 점령…걷는게 고역

대구 산격동 대도시장 삼거리에서 산격초교사이 도로에 불법주정차 차량으로 인해 보행자들이 불편과 사고위험에 노출돼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구 산격동 대도시장 삼거리에서 산격초교사이 도로에 불법주정차 차량으로 인해 보행자들이 불편과 사고위험에 노출돼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걷고 싶은 도시'는 자동차보다 사람을 더 섬기는 도시다. 1990년대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국내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역사는 '보행권' 되찾기에서 출발했다. 도로의 진정한 주인은 사람이며, 사람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쾌적하게 걸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구는 과연 걷고 싶은 도시인가. 갈 길이 멀다. 걷고 싶기는커녕 보행권 실종 수준이다. 단순히 대중전용교통지구 하나 조성하는 게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가 될 수 없다. 보행권을 위한 인도, 육교, 횡단보도 정비 계획부터 서둘러야 한다. 더불어 차 없는 거리, 디자인 거리 정책 개발을 고민해야 한다.

글 싣는 순서

①인도②육교 ③횡단보도 ④차 없는 거리 ⑤디자인 거리

걷고 싶은 도시, 보행권 되찾기를 위한 첫 번째 화두는 '인도' 다. 대구 왕복 2차선 간선도로나 이면도로에는 인도조차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나마 있는 인도도 결코 걷고 싶은 길이 아니다. 함몰·파손되거나 불법 적치물, 광고물로 제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됐다.

그러나 대구시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인도 설치 및 정비가 필요한 구간을 전수 조사하지 않았다. 20m 이하 도로 관리는 '구청 소관'이란 게 그 이유다. 반면 서울(2007년)과 부산(2009년)은 시가 먼저 나서 시내 전역에 대한 보행 실태 조사를 벌였고, 이후 전폭적 인도 환경 개선에 뛰어들고 있다.

◆인도 없는 도로

'중구 대봉 파출소~대봉네거리(1.5km) 구간은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다. 사람들은 정차된 차량 사이로 곡예하듯 피해 다니고, 시내버스라도 지나갈 때면 차량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피해 숨어야 한다. 성질 급한 택시 기사는 앞차를 추월하려고 중앙선을 넘나들며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박규성(35·가명)씨는 "소방도로도 아니고, 시내버스가 두 대나 다니는 간선도로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본사 정용백 시민기자는 지난해 7월 7일자 '시민기자들의 눈'을 통해 이를 지적했다. 그후 1년 3개월여. 변한 것은 없다. 8일 이곳에서는 정차 중인 학원 차량을 피해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려던 차량이 학원 차량에서 내려 도로를 횡단하던 꼬마와 부딪히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폭 10m, 길이 350m에 이르는 동구청길(동구청∼신암5동 새마을금고)에도 인도가 없다. 2003년 대구 보행환경 개선 기본계획에서 한쪽 보도나 보차 분리 펜스가 필요한 곳으로 지적됐으나 여태 그대로다. 행인들은 불법주정차 차량을 피해 도로 중앙으로 걸어다녀야 한다. 오후 4시, 인근 중학교에서 수십여명의 학생들이 도로에 쏟아져 나온다. 인파에 막힌 차들이 요란한 경적을 울려댄다. '학교 앞 천천히'. 도로위에 새겨진 글귀가 무색하다. 딸을 마중나온 김숙자(53·여)씨는 "갓길을 걷다 차량 경적소리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루 수백명의 학생들이 오가는 길에 인도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부시외버스터미널(북부정류장∼북부정류장 입구)은 누더기 모습을 하고 있다. 정류장 입구에서 터미널까지 이어지는 40여m 도로에 인도가 없다. 노란색 구분선이 도로가에 그어져 있지만 선 안은 상가 간판과 택시 차지다. 터미널에서 버스가 나올 때면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된다. 큰 곡선을 그리며 출차하는 버스가 중앙선을 넘나들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버스를 피해 종종걸음 친다. 터미널로 진입하려는 차량과 버스가 엉킬 때면 귀를 찢는 차량 경적소리가 난다. 이곳 역시 2003년 조사에서 한쪽 인도나 보차 분리 펜스, 택시 베이 정비가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변한 게 전혀 없다.

◆인도 맞나요?

파티마삼거리~대구공고네거리 구간은 거리가 아니라 시장통이다. 알록달록한 파라솔이 10여m 간격으로 꽂혀 있다. 파라솔 밑에는 잡화들로 어지럽다. 도로가는 아예 1t트럭을 대 놓고 전을 편 상인도 보인다. 3m 남짓한 인도는 불법 노점상들이 점령해 남은 공간이 채 1m가 되지 않는다. 무질서하다. 비좁은 인도 위엔 택배, 배달 오토바이까지 가세해 더욱 혼잡하다.

건들바위네거리∼명덕네거리 구간 인도는 출렁인다. 시야를 전방 1m 앞에 고정시키고 걷노라면 울렁증이 생긴다. 울퉁불퉁, 구불구불. 평탄한 곳은 찾아볼 수 없다. 가로수가 서 있는 턱은 뜯겨져 나가 볼품없다. 군데군데 파인 곳은 콘크리트로 땜질을 해 놔 볼썽사납다. 튀어나온 맨홀 뚜껑에 구두 앞이 망가지기도 한다. 갈색, 푸른색 인도 벽돌은 제 색을 잃었고 인도 곳곳에 묻어 있는 그을음으로 지저분하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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