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리뷰] 디스트릭트9

입력 2009-10-17 15:38:43

인류에 핍박받는 외계인,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음모

예고편과는 사뭇 다른 영화였다. 외계 문명과의 만남을 다룬 영화는 많았지만 '디스트릭트(District) 9'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인류와 외계인의 만남을 그려내고 있다. 영화에서 외계인은 인류가 전혀 이질적으로 생각하는 한 대상일 뿐이다.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혼란을 야기하는 한 족속일 뿐이다. 그것은 먼 별나라에서 온 외계인일 수도 있고, 우리와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외국인일 수도 있으며, 똑같은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생각을 달리하는 부류일 수도 있다. 영화는 비겁한 인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난데없이 이뤄진 외계인과의 만남

외계문명과 지구인의 만남은 그다지 극적이지도 야단스럽지도 않았다. 흔한 영화에서처럼 뉴욕, 런던, 시카고 상공이 아니라 거대한 비행 접시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스 상공에 난데없이 나타났다. 도시를 뒤덮을 만큼 거대한 비행체가 도시 상공에 멈춰선 것이다. 미동도 없이 가만히 떠 있던 비행체에서 우주선 하나가 분리돼 지구에 착륙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지구인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파악하기 위해 비행체로 침투한다. 용접기로 뚫고 들어간 비행체에서 이뤄진 지구 역사상 최초의 인류와 외계인의 만남. 그 속에는 최첨단 과학으로 꾸며진 멋진 기계 장치는 없었다. 다만 어두컴컴한 곳에서 굶주림에 다 쓰러져가는 엄청난 숫자의 외계인이 발견된다. 지구인은 이들을 비행체에서 끌어내려 요하네스버그내 한 지역에 모아둔다. 바로 외계인 수용구역 '디스트릭트 9'이다.

200만명을 헤아리는 외계인들. 이들을 모아둔 '디스트릭트 9'은 거대한 난민 캠프를 연상케 한다. 널빤지와 녹슨 철판, 종이 조각으로 덕지덕지 만든 오두막이 외계인들의 집이다.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호기심과 경외의 대상이던 외계인은 골칫덩이가 됐고, '디스트릭트 9'은 범죄의 온상으로 변했다. 외계인들은 인근 지구인의 집과 차를 습격해 자동차 고무 타이어를 씹어먹고, 지구인들의 물건을 빼앗는다. 심지어 반항하는 지구인을 죽이기도 한다. 외계인들은 '프론'이라는 말로 비하되며, 집단 성토의 대상이 된다. 불만이 극에 달하자 시민들은 거리 시위에 나서고, 외계인 관리국인 MNU는 이들을 요하네스버그 외곽으로 이주시키기로 결정한다.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비극의 시작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은 여기부터다. MNU가 외계인들을 '디스트릭트 10'으로 집단 이주시키는 계획을 추진하고, 총책임자로 어리버리한 데다 잘난 척 하기를 좋아하는 비커스가 임명된다. 비커스는 MNU 국장의 사위. 드디어 군사 작전을 방불케하는 MNU의 집단이주계획이 시작되고, 그 첫 작업으로 MNU 요원들은 외계인들을 찾아가 이주동의서에 서명을 받기로 한다. 외계인들의 저항은 거세다. '이주'라는 말조차 모르는 외계인은 MNU 요원과 마찰을 빚다가 총격전까지 벌어진다. 오두막을 뒤지던 비커스 일행은 외계인이 만든 엄청난 무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사실 MNU의 목적은 외계인 무기를 빼내는 데 있었다. MNU는 외계인 관리국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세계 제2위의 무기업체. 외계인과의 충돌에서 팔을 다친 비커스는 한 오두막에서 금속 원통에 든 이상한 검은 색 물질을 발견하고 실수로 얼굴에 그 검은색 물체를 뒤집어 쓰게 된다. 이후 그의 몸에는 이상한 변화가 나타난다. 부러진 팔을 감았던 붕대를 풀어헤치자 손이 아니라 외계인의 기다란 촉수가 튀어나온다. MNU 본부로 후송된 비커스. 본부는 비커스가 외계인으로 변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간 MNU가 압수했던 외계인 무기는 인간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외계인 DNA에 반응하는 일종의 생체무기였기 때문. 그런데 바로 인간과 외계인의 '잡종'이 된 비커스는 이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된다. 향후 군사적 가치로 따지면 수십억달러의 몸값인 셈. MNU 본부는 급기야 비커스의 생체 조직들을 분리해 DNA를 추출하기로 하는데. 과연 비커스는 어떻게 될 것인가?

◆'디스트릭트 9'은 인류에 대한 고발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처음부터 카메라는 영화 촬영이 아닌 MNU의 외계인 이주계획을 보도하는 방송국 카메라 역할을 하며 관객에게 다가간다. 이처럼 페이크 다큐, 즉 가짜 다큐 형식으로 영화를 꾸민 목적은 현실 고발 때문이다. 영화 제목 '디스트릭트 9'도 1966년 남아공 정부가 케이프타운 내 디스트릭트 6를 백인 거주지로 공포한 뒤 유색인종 6천여 명을 쫓아낸 실제 사건을 겨냥해서 지어졌다. 외계인을 끌어들였을 뿐 사실 이 작품은 정치적 메시지가 짙은 영화다.

인류가 인류에게 저질렀던, 다수가 소수에게 저질렀던, 지배자가 피지배층에 저질렀던 만행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인디언 멸망사를 다룬 책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나 대를 이은 흑인 노예의 슬픈 역사를 다룬 '뿌리'를 떠올리게 한다. 인종 청소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집단 학살도 예외일 수 없다. 인간은 처음부터 외계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의사소통이 충분한 상황에서도 외계인을 집단 거주지에 가둬두고, 그들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한 외계인 과학자는 결국 지구 탈출에 성공한다. 유일하게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려했던 '잡종 인간' 비커스를 향해 "3년 뒤에 반드시 너를 구하러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다. 그 말은 영화의 후속편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인류에게 던지는 마지막 경고처럼 들린다. 자신의 종족이 인간에게 생체실험 당하는 장면까지 목격했던 그 외계인. 과연 그들이 가공할 무기로 무장한 채 3년 뒤 지구 상공에 나타났을 때 인류는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변명할 것인가? 요하네스버그 출신인 닐 블롬캠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첫 장편 데뷔작이며, 미국 개봉 첫 주 제작비 3천만달러를 넘어서는 3천7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킹콩'의 피터 잭슨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