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학교 몇 곳에서 수업을 할 기회가 생겼다. 긴장과 설렘을 안고 찾아간 교실. 하지만 수업 종이 울린 뒤에도 아이들은 복도를 뛰어다녔고, 심지어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도 제자리를 찾는 학생은 드물었다. 몇 차례 고함소리가 오간 뒤에야 아이들은 뭉그적거리며 자리를 찾아 앉았다. 어수선한 분위기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학생들에게 큰소리를 내가며 난데없는 인생 강의까지 하면서 엄숙한(?) 분위기 속에 어렵사리 수업을 마쳤다. "아이들이 많이 시끄럽죠? 예전 기자님 학창시절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선생님의 말에서 자조적인 웃음과 허탈함이 묻어났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처럼 들리기도 했다.
교편을 잡고 있는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꺼낸 뒤 핏대를 세워가며 공교육의 한심함을 비판했다. 가만히 듣던 친구가 말했다. "그래, 중학교는 좀 시끄럽지. 그런데 고등학교는 더 심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고등학교에 가면 아이들 깨우는 게 일이야. 수업시간에도 아이들 깨우다 보면 진이 다 빠져. 시끌벅적한 수업 좀 해봤으면 좋겠어." 더 들을 말도 없었다. 이래서야 무슨 교육이 이뤄진다는 말인가. 마치 당장이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처럼 교육의 심각성을 따지고 들었다. 하기야 그 친구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마는, 앞에 앉은 대한민국 교사라는 이유로 온갖 욕을 다 들었다. 친구는 말했다. "넌 하루에 몇 시간 자냐? 우리 고등학생들 하루 평균 4, 5시간밖에 못 자. 이름만 바꿨을 뿐이지 보충수업 9교시까지 하고, 밤 9~11시에 야간자습 끝나면 다시 학원에 가. 새벽 1, 2시가 넘어야 집에 도착해. 오전 7시면 학교에 나와야 해. 3년을 그렇게 살아야 해." 친구는 연거푸 소주 잔을 비워댔다.
해답도 없는 교육 이야기를 끄집어낸 이유? 우리의 교육 현실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교편을 잡고 있는 다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아이들 불쌍해. 예전 우리는 학교 선생님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교에다 학원과 과외 선생님까지. 우리보다 수십배는 많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제각각의 요구를 해. 교과목은 기본이고 피아노, 태권도, 바둑, 미술까지. 말 없이 꾸역꾸역 받아먹는 아이들이 신기하지 않냐? 집단으로 미치지 않는 게 놀라울 정도야."
나름대로 다 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다. 부모는 피땀 흘려 번 돈으로 교육비 대고, 학교와 학원 선생님들은 저마다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안달이고, 아이들은 싫건 좋건 안간힘을 쓰며 따라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모두 곁눈질 한 번 못하고 열심히 사는데, 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세상이 참 웃기다. '남들 다 하는데 우리라고 별수 있어'라는 말 때문에 작금의 개그콘서트 같은 상황이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사 탓, 부모 탓, 학생 탓할 것 없다. 언론 탓이라고? 서울대 합격자 숫자로 고교 순위 매겨놓은 기사가 나오면 눈 씻고 찾아보는 사람이 누구더라.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 탓일까? 청와대에 묻고 싶고, 교육부와 거대 사교육 집단에 묻고 싶다. 판박이처럼 똑같은 교육과정에다 똑같은 사교육을 받고 자라난 우리 아이들을 입학사정관들이 나서서 도대체 어떻게 구분 짓겠다는 건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우리 아이들은 점점 조용해진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김수용 문화체육부 차장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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