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욕]최준용의 인턴십 다이어리-#2. 뉴욕 하면 떠오르는 것들

입력 2009-10-08 15:45:04

황폐할 것 같은 거리는 음악과 미소 가득

뉴욕에서 생활한 지 이제 어언 3개월,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 글을 쓰다 보니 역시나 뉴욕에 오기 전의 거대한 기대감과 현재의 초라한 현실 간의 괴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며 쓴웃음 짓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과 '뉴욕에서의 생활'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게중 십중팔구는 미국 드라마 '가십걸' '섹스 앤 더 시티'라든지, 'Last love in New York' '세렌디 피티' '이터널 선샤인'과 같은 미화된 주인공들의 삶을 꿈꾸고 있었다.

화려한 뉴욕의 야경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오피스텔, 늦은 아침 친구들과의 수다와 함께하는 화려한 브런치, 멋진 금발의 여성(혹은 남성)과의 운명적인 만남, 커피와 도넛봉지, 그리고 신문을 들고 출근하는 뉴요커, 이브닝 파티에서 한 손에 와인을 들고서 우아하게 거닐기, 센트럴 파크에서의 조깅 등….

사실 뉴욕 출발 이전, 준비과정에 나 또한 그러한 기대감이 오른쪽 머리위로 뭉게뭉게 솟아올라 있었지만 이곳의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저런 기대들의 많은 부분들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전망 좋고 시설 좋은 오피스텔은 못해도 월세 2천달러는 거뜬히 넘어서고 브런치는 가격이 비싸고 인기좋은 식당은 주말에 적어도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하며 금발의 여성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이브닝 파티는 어디서 한다는 소문조차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같은 즐거움이 아니더라도, 소소한 즐거움은 거리에 가득하다.

비록, 아침마다 부스스 일어나 열악한 식사를 하고, 시간은 절대 맞추지 않는 버스를 기다려 만원전철이다 못해 십만은 족히 될 법한 인파의 물결 속에서, 아름답지 못한 냄새를 맡아가며 더러운 지하철 정거장을 거닐고, 정시에 출근을 해야 하며 값싼 점심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지만.

아침마다 눈부신 햇살에 깨어나 시간의 속박에 벗어난 여유로운 버스를 타며 다양한 사람들의 친절함이 외로움을 잊게 해준다. 타향의 향기에 잔뜩 취하게 만들고 유서깊은 전철을 타고 전철 입구에서 메트로 신문을 나눠주는 스페니시와 'Good morning' 인사를 나눈다. 또 점심시간마다 소호거리를 거닐며 웃음 짓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뉴욕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뉴욕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매우 황폐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했었다. 대도시에 살수록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리서치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사실은? 정반대라는 결론을 내렸다. 뉴욕은 어디를 가든지 음악이 가득한 곳이다. 초등학생도 다룰 수 있는 멜로디언부터 난타 그룹, 콘트라 베이스 첼로는 흔하고, 처음 보는 특이한 악기들까지, 그 종류만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지하철역, 공원, 광장, 길가 등 사람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그들은 연주 중이다. 연주를 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부끄러움이나 멋적음 대신 자신의 연주를 만끽하는 즐거움과 여유있는 미소가 가득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의 도시의 사람들이 황폐할 리가 만무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연주는 NYU 근처에 있는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의 점심시간 재즈 트리오와 34가 역안의 흑인들의 난타이다. 특히 34가 역의 난타는 소름끼칠 정도로 흥겹다! 지하철 쇠기둥에 기대어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내 몸속에 심장이 10개는 더 생긴 것 같이 두근거리는 흥겨움으로 가득 찬다.

뉴욕에도 가을이 다가왔다. 옷의 소매길이는 길어지고 생각은 깊어진다. 길거리엔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서늘하고 하늘은 높아졌다. 휴일을 맞이하여 평소 읽지 않던 책 한 권을 들고서 워싱턴 스퀘어 파크로 향한다.

(경북대 경영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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