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에 쥐가 나 꼼짝할 수 없다. 아름드리 소나무 뒤에서 3시간 반 동안이나 굳은 채로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숲은 지난밤 냉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가끔 이름 모를 새들이 푸덕거릴 뿐 고요하다.
'탕탕' 두 발의 총성이 숲의 정적을 깼다. "100% 맞았다. 밑으로 처졌다. 추격하겠다." 거친 숨소리가 군복 윗주머니에 꽂혀 있는 무전기를 타고 흐른다. 긴박한 무전에 취재진과 함께 2번 길목을 지키고 있던 김종백(55) 엽사는 총을 곧추세운다. 순식간에 총구멍이 전방을 향한다. 팽팽한 긴장감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5분 뒤 세 발의 총성이 다시 메아리친다. "한 마리는 잡았다. 다른 놈은 브론들리(사냥개)가 쫓고 있다." 멧돼지 한 마리가 3번 목을 지키던 강은덕(68) 엽사 총을 맞고 꼬꾸라졌다.
"브론들리가 놈에게 받쳐 다쳤다. 멧돼지는 계속 도망치고 있다. 끝까지 쫓겠다." 4번 목 김순규(55) 엽사의 숨찬 음성이 들린다. 30분쯤 지났을까? 몇 발의 총성이 더 울린다. "잡았다."
5일 오전 9시 칠곡 지천면 연호리 한 야산. '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대구경북칠곡지회' 엽사 12명이 모였다. 하나같이 잿빛 군복을 입고 있다. 허리에는 엄지손가락 굵기의 총알이 박혀 있는 탄띠가 둘러져 있다. 전투용 칼과 무전기까지 휴대했다.
칠곡지회 엽사들로 구성된 '수확기 야생동물 피해방지단'. 경북도가 8월 1일부터 이달 말까지 농작물 피해를 막고 야생동물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해 운영해 오고 있는 단체다. 박윤천(60) 회장이 등산복을 입고 나온 취재진에게 "그 차림으론 험한 산을 동행할 수 없다"며 군복 입기를 권했다.
30분 뒤 시작된 멧돼지 소탕은 군사 작전을 방불케 했다. 엽사들은 박 회장의 무전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모두가 30, 40년 엽사 경력의 베테랑 총잡이지만 총을 다루기 때문에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 엽사 11명이 산 능선을 따라 50m 간격으로 늘어서는 데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멧돼지 퇴로를 차단한 것. 눈매가 사나운 사냥개 8마리도 동원됐다.
"개를 밀겠다(몰이 시작). 목(퇴로)에서 절대 이탈하지 말라."
오전 10시 30분 정상에서 개 몰이가 시작됐다. 사냥개는 순식간에 방사형으로 퍼져나갔고 '킁킁'되며 풀숲, 가시덤불을 헤집었다.
'탕탕탕.'
오후 3시 30분. 멧돼지 두마리가 엽사들의 총앞에 주검이 돼 돌아왔다. 마을 어귀에 세워둔 엽사들의 차에는 주민들이 옹성거리며 모여 있다. 엽사들이 떴다는 소문에 격려를 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우리 은인이여. 망할 놈의 멧돼지 때문에 한 해 농사를 헛 지었어. 손수 딴 건데 한번 자셔봐." 한 할머니가 연방 엽사들의 손을 부여잡는다. 등나무 껍질처럼 갈라진 할머니의 손에는 자두와 빵, 막걸리가 들려 있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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