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위쪽인가?
▨『지도와 권력』(알마, 2007) 아서 제이 클링호퍼 지음/이용주 옮김
가끔씩 습관처럼 받아들여 온 것들에 "왜"라는 의문을 던져보면 또 다른 재밋거리가 있습니다. 지도가 바로 그렇습니다. 1979년 스튜어트 맥아더라는 사람은 우리가 남쪽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을 위쪽에 위치하도록 지도를 그렸습니다. 소위 지금까지 제작된 지도들을 거꾸로 그린 것입니다. 자오선을 그리니치 천문대가 아닌 호주의 캔버라를 중심으로 그렸습니다. 유럽은 오른쪽 하단 구석에 미국은 왼쪽 하단에 놓이게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스튜어트 맥아더가 그린 지도가 과연 거꾸로 된 것인가에 대한 관점입니다. 즉 지금까지 우리가 위쪽이라고 생각해 온 북쪽이 과연 위쪽인가라는 문제입니다. 우주 공간에 공처럼 굴러다니는 지구가 아래 위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북쪽을 위쪽이라고 생각하고 지도를 그려온 것은 일종의 문화적 심리적 영역을 지도로 표현한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도를 '문화의 거울' '문화적 텍스트'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지도와 권력』(알마, 2007)의 저자 아서 제이 클링호퍼가 '왜 유럽은 지도 상단에 표시되어 있고, 아프리카는 지도 하단에 표시되어 있을까?'라는 의문을 문제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유럽이 지도의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면 분명 그린 자의 주관적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수 백 년 동안 사용해온 지도는 16세기의 지도 제작자 메르카토르(1512~1594)의 작품입니다. 그는 종교가 있었지만 지도에 관한한 수학적인 접근방법을 사용했고 기독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그린 메르카토르 투영도법은 정확한 지형을 보전했으며 정밀한 방위와 각도로 인해 '발견의 시대'내내 항해사들에게 실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도는 결과적으로 유럽 제국들의 정치적 이익을 충족시키는 유효한 수단이 되었고, 유럽을 세계의 중심에 위치시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메르카토르 도법의 축척은 적도 부근에서는 정밀하나 극 쪽으로 갈수록 왜곡이 심해집니다. 따라서 위도 80도 부근에서는 실제 크기의 6배로 과장되게 됩니다. 북극 근처에 자리한 그린란드의 경우 실제로는 중국의 1/4, 아프리카의 1/14에 불과한 크기인데도 중국보다 크고 아프리카와 비슷한 크기로 그려져 있습니다. 북아메리카의 실제 크기도 아프리카의 2/3에 불과하지만 지도상에는 북아메리카를 훨씬 크게 그렸습니다. 전체적으로 메르카토르 도법은 중간 위도에 있는 북아메리카와 유럽을 과장했고 인도와 아시아 대륙은 지나치게 축소한 것입니다.
메르카토르가 유럽을 크게 그린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도가 생계수단이었던 그는 주 고객이었던 유럽인들의 구미에 맞는 지도를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대륙보다 유럽을 세밀하고 크게 그린 지도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가 그린 1569년 지도에는 지구 표면의 거의 1/3을 차지하는 남쪽 미탐사지역 대부분이 잘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북반구가 남반구보다 훨씬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고, 유럽을 지도의 가운데 지점으로 이동시켰습니다. 물론 그가 의도적으로 적도와 남쪽 지역을 무시하거나 식민지 정책의 확장을 장려하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볼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전 세계 학생들은 그의 지도를 통해서 유럽중심적인 편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최근 세계 22개 지역의 지리학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15개 지역의 학생들이 자신이 속한 대륙의 크기를 실제보다 크게 그렸다고 합니다. 이는 당연한 결과로서 지도에는 제작자의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라는 주관성이 개입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참여한 22개 지역의 모든 학생이 유럽을 실제보다 크게 그렸다는 점이고, 20개 지역의 학생이 아프리카를 작게 그렸다는 점입니다. 결국 지도는 땅의 모양이 아니라 '권력을 투영'하는 일에 관여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한국 중심의 세계지도와 한국 중심의 우주지도를 그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노동일(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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