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눈 뜨게 한 '퇴계의 재발견'

입력 2009-09-30 07:45:42

도산서원 향사례 개방…퇴계정식 개발·브랜드화

퇴계 이황 선생의 유덕(遺德)을 기리는 도산서원 향사례(享祀禮)가 29일 서원 건립 후 435년 만에 일반인에 처음 공개됐다. 헌관들이 퇴계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상덕사(尙德祠)에서 재배를 마치고 문을 나서고 있다. 도산서원은 일반인의 참관을 쉽게 하기 위해 향사례 시간을 변경하고, 입재(入齋·향사에 참여할 수 있는 헌관과 축관, 유생 등이 서원 밖으로 나가지 않고 머무는 것)도 2박 3일에서 1박 2일로 줄였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퇴계 이황 선생의 유덕(遺德)을 기리는 도산서원 향사례(享祀禮)가 29일 서원 건립 후 435년 만에 일반인에 처음 공개됐다. 헌관들이 퇴계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상덕사(尙德祠)에서 재배를 마치고 문을 나서고 있다. 도산서원은 일반인의 참관을 쉽게 하기 위해 향사례 시간을 변경하고, 입재(入齋·향사에 참여할 수 있는 헌관과 축관, 유생 등이 서원 밖으로 나가지 않고 머무는 것)도 2박 3일에서 1박 2일로 줄였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퇴계 이황(李滉)은 조선 명종과 선조시대의 명신(名臣)이었다. 정치보다는 학자를 지향한 인물로 당대 성리학의 거두였다. 1501년 음력 11월 25일에 태어나 1570년 음력 12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퇴계는 모든 벼슬을 물리치고 안동으로 내려와 도산서원을 짓고 자연을 벗삼아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로부터 450여년이 흐른 최근, 안동지역 곳곳에서 '되살아나는 퇴계'를 느낄 수 있다.

도산서원은 2002년 선비문화수련원을 개설하고 지금까지 공무원, 교사, 학생 등 1만4천50명이 선비문화를 체험했다. 퇴계 선생의 삶의 철학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덕성을 회복하는 모범으로 삼고 있다.

◆450년 만에 빗장 연 '도산서원 향사례'

퇴계 선생이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학문을 쌓았던 도산서원에 일대 변화가 일고 있다. 29일 퇴계 선생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향사례는 435년 만에 일반인 참관을 허용했다. 그동안 굳게 닫혔던 향사례 빗장을 열고 일반인들의 참관을 가능케 해 후손들이 조상에 대한 섬김과 경외심을 배우도록 했다.

특히 지난해까지 오전 1시쯤에 올렸던 향사례 시간도 올해부터는 오전 11시로 변경해 한낮에 봉행했다. 게다가 향사 기간도 모든 제관들이 사흘 전이나 이틀 전에 입재했으나 시대 흐름과 후학들의 교육 효율성을 고려해 올해부터는 하루 전 입재로 바꿨다.

이처럼 해마다 봄·가을 중정일에 거행되는 향사례는 당초 엄격한 통제와 함께 2박 3일 일정으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문화관광상품이었으나 개방을 통해 앞으로 도산서원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 제공과 젊은 세대들이 전통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도산서원의 변화는 지난 2002년, 조선시대부터 428년간 계속돼 온 '금녀'의 벽을 허물어 전국 서원에서는 처음으로 1574년 도산서원이 건립된 후 여성의 참배를 금기시해 온 전통을 없애기도 했다.

◆450년 만에 새롭게 연구·개발된 '퇴계정식'

달래 된장, 쑥국, 참죽 장아찌, 씀바귀 무침, 시래기 콩가루국, 연근 조림 등 퇴계 선생의 검소한 음식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퇴계 정식'이 450여년 만에 새롭게 개발됐다.

안동시발전협의회(회장 김성진 시의원)는 현대인 입맛에 맞도록 향토음식을 메뉴화하고 이를 안동지역이 갖고 있는 고택문화와 접목한 관광 먹을거리 문화로 발전시키기 위해 (사)문화를가꾸는사람들(이사장 권두현)과 함께 '안동 향토음식 브랜드 세트 메뉴 개발사업'에 나선 것.

퇴계 선생은 평소 '3가지 이상의 반찬을 내놓지 말라'고 할 정도로 검소한 식습관을 가졌던 것으로 유명하다.

안동시발전협의회는 ▷안동 관광산업에서 안동 이미지에 맞는 식품 개발 ▷고증을 통한 현대적 복원·계승 등 지역 특색을 살린 향토음식 재현 및 개발 추진 ▷유교와 불교 음식의 특색을 담아 안동 이미지에 걸맞은 먹을거리 제공 ▷도시락 개발로 고택 관광객들의 식사문제 해결 필요성에 따라 이 사업을 추진했다.

'퇴계정식'에는 지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들로 맛깔스럽게 차린 음식들이 선보였다. 계절마다 다른 메뉴와 안동식혜, 국화차, 호박떡이 안동지역 특산품으로 후식이 곁들여진다. 가격은 1만원.

◆국악 스토리텔링 뮤지컬 '450년의 사랑'

안동이 자랑하는 성리학의 태두 퇴계 선생의 고매한 인격과 인간적인 사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국악 스토리텔링 뮤지컬 '450년의 사랑'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동안 2개월에 걸쳐 매주 토요일마다 안동 오천군자리 고택을 실제 무대로 열렸던 이 작품은 퇴계 선생이 9개월간 군수로 봉직했던 단양에서 실존했던 '두향'과의 인격적이며 애절한 사랑을 교육적 테마로 구성, 관광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한 스타일의 뮤지컬을 안동 최초로 시도했다.

'450년의 사랑' 스토리텔링 뮤지컬은 전통 고택의 아름다운 실경을 배경으로 향토 예술인들이 직접 출연했다. 순수 지역 뮤지컬을 개발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문화원형이 밀집돼 있는 안동의 유교문화 핵심 콘텐츠로 가능성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고 있는 현세에서 퇴계 선생이 보여준 지고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이 공연은 안동국악단 전미경 단장이 준비하고 김준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본부장이 함께했다.

이 작품은 퇴계의 삶 가운데 아주 짧았던 기간, 한 여인과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현대적으로 구성해 안동의 이야기꾼과 국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일종의 갈라뮤지컬 형식으로 꾸며 '인간 퇴계'를 엿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림과 글로 걷는 '450년 전 퇴계 오솔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권준 화백과 최성달 작가가 1년여에 걸쳐 퇴계 오솔길과 도산구곡길 등 5천여㎞에 이르는 답사를 통해 작업했던 '그림'이 전시되고 '글'이 책으로 출간됐다. 이들이 답사와 기행, 역사적 사실 더듬기, 문화유산 발굴 및 고증을 통한 복원 등 작업 과정을 화폭에 담고 원고지에 채웠던 1년여 기간의 여정을 정리하는 '2009 권준, 퇴계 오솔길 한(韓)문화 기획전'을 마련하고, 책 '사람의 길을 가다'를 출간한 것.

27일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박물관 전시실에서 마련된 기획전 개막식과 출판기념회에는 100여명의 지역 인사들이 참석해 이 두 사람이 전하려 했던 퇴계의 사상과 삶, 퇴계가 걸었던 아름다운 길, 지역 유림들의 학문적 교류와 고뇌 등 450년 세월을 거슬러 얻으려 했던 교훈에 대해 교감을 나눴다.

권준 화백은 "지난해 우연찮게 지역 인사들로부터 퇴계 오솔길을 화폭에 담아 볼 것을 제안받았다. 퇴계 오솔길과 도산구곡 등 퇴계 선생의 흔적, 지역문화유산이 산재한 역사적 배경을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이 쉽지 않았지만 누군가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1년을 그 길과 계곡에 정신없이 빠져 있었다"고 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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