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칠성고 '수준별 이동수업' 성과

입력 2009-09-29 08:06:39

과목별 성적 향상 지수 30 안팎 사교육 없이 공교육 한계 넘는다

사교육 없는 학교를 시범 운영하고 있는 대구 칠성고의 장한숙 교사가 11명의 학생들과 끊임없이 질문을 주고받으며 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사교육 없는 학교를 시범 운영하고 있는 대구 칠성고의 장한숙 교사가 11명의 학생들과 끊임없이 질문을 주고받으며 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25일 오후 대구 칠성고 국어 수업시간. 교사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둘러앉은 수업 형태가 이채로웠다. 학생 수는 고작 11명. 장한숙 교사는 학생 한명 한명과 눈을 맞추며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고 있었다.

"연암 박지원의 작품 가운데 어떤 글이 가장 좋은가요?" "열하일기요." "어떤 면이 좋다고 생각하나요?" "단순히 중국을 여행하며 본 경치나 풍물을 기록한 기행문이 아니라 실학정신까지 담아낸 명문장이라는 점이 대단하다고 봅니다."

장 교사는 빙글 돌아서며 다른 학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마치 학원 수업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올해 개교한 칠성고가 교육과정 운영에서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수준별 이동수업은 2학기에 접어들고 있을 뿐인데도 이미 공교육의 한계를 상당 부분 넘어서고 있었다. 단순히 2, 3개 학급을 섞어 수준별로 같은 수의 교실로 나누는 형태가 아니라 2배 이상의 학급을 만들어 진행하는 방식이다. 수학의 경우 학생들의 수준과 특성을 고려해 2개 학급을 5개 학급으로 나눴다. 학생 수가 가장 적은 학급이 7명, 가장 많은 학급이라도 16명이다. 국어와 영어도 2개 학급을 4개로 나눠 20명 이내로 학급을 편성했다.

일반 학교에서는 엄두도 내기 힘든 방식이지만 '사교육 없는 학교' 시범학교에 선정돼 예산에 여유가 생기고 교육과정 운영에도 자율성이 커진 덕분이다. 과목별로 외부 강사 2, 3명이 수업을 나눠 맡는다. 수준별 수업이 주는 위화감은 찾기 힘들다. 오히려 소규모 그룹 과외 형식의 수업에 학생들의 교과에 대한 흥미가 높아졌다. 이는 곧 학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3월 초 학력평가와 비교해 6월 학력평가에서 성적 향상 지수가 과목마다 30 안팎을 기록했다. 여타 학교에서는 쉽게 따라잡기 힘든 수준이다.

이창환 교장은 "사교육 수요를 학교 수업에서 충족시켜 줌으로써 사교육비 절감과 성적 향상이라는 성과를 동시에 거두고 있다"며 "교사들의 책임감이 커지고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아진 게 눈에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역시 수준별로 진행할 뿐만 아니라 오후 7시 10분부터 9시까지 특별 심화·보충반도 운영한다. 오후 11시까지 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실 형태로 운영하는 '반딧불 교실'도 인기다. 학원은 물론 독서실조차 다닐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남도형 군은 "학생 수가 적어서 눈치 보지 않고 선생님께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며 "학교에서 필요한 공부를 모두 해결할 수 있어서 집에서도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고 했다.

칠성고는 학력뿐만 아니라 인성, 체력 등의 측면에서도 가정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도록 2학기부터 또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인 1악기 운동이 대표적이다. 기타와 색소폰, 드럼, 전자기타, 사물놀이 등 원하는 악기를 선택해 전문가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학부모의 도움을 받아 전교생이 태권도도 배우기 시작했다.

장한숙 교사는 "예전 학교에 비해 수업 준비나 학생 지도가 한층 힘들지만 학생들의 변화가 금세 나타나니 의욕이 더 생긴다"며 "다른 학교에서도 이 같은 형태의 교실 운영이 가능해진다면 공교육의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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