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보이 모자에 선글라스를 꼈다. 스카프도 둘렀다. 한껏 멋을 부린 연주자와 달리 무대는 볼품없다.
지게차 운전사 김상철(52·대구 중구 동인동)씨가 '거리의 악사'로 변신,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전하고 있다. 대구 중구 동인동 한 자동차 정비공장 앞에 차려진 즉석 무대에서 김씨는 오늘도 황금색 색소폰을 입에 문다. 그의 옆에는 '애마' 지게차가 자리잡고 있다. 400kg에 달하는 음향 장비를 지게차로 싣고 다니며 거리 공연을 펼친다. 지게차 곳곳에는 '달리는 색소폰', '울어라 색소폰'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김씨의 '색소폰 인생'은 벌써 5년째. 색소폰은 힘든 시기를 헤쳐나갈 수 있게 해 준 축복이었다. "9년 전 교통사고로 20세이던 딸을 잃었어요." 지게차는 멈췄고 3년을 꼬박 술로 지냈다. 보다 못한 친구들이 음악을 권유했다. "친구들과 제비뽑기를 했죠. 약속을 하긴 했는데…, '색소폰'이라고 적힌 종이를 보고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고요. 하필 최고가인 색소폰이 걸렸어요."
당시 색소폰 가격은 250만원을 훌쩍 넘었다. 김씨는 "한 달 수입을 고스란히 쏟아 부어도 모자라는 돈이었다"며 "10만원짜리 기타를 뽑은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색소폰이 손에 익어갈수록 피폐한 몸과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색소폰 소리는 사람 목소리와 가장 닮았어요. 색소폰이 꼭 내 마음의 소리를 대신해 주는 것 같아 편안해져요." 이후 2천만원을 들여 음향 장비를 갖췄고, 4년 전부터는 신천 둔치에서 거리 공연을 펼치고 있다. 처음에는 거친 색소폰 소음(?)에 항의가 많았지만 이제는 두터운 팬층이 생겨났다. 신청곡까지 받을 정도다.
"한 달에 스무 번이나 소음 민원으로 경찰 지구대에 끌려갔어요." 김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동신교 신천 둔치에서 오후 7∼10시 시민들을 찾아가고 있다. 1천곡을 쉬지 않고 연주해 기네스북에 오르고 싶은 꿈도 있다. 연주 답례로 모이는 시민들의 쌈짓돈은 불우 이웃을 위해 쓴다. "제 색소폰 연주를 듣는 모두가 저처럼 행복해 졌으면 합니다."
가수 김돈규의 '나만의 슬픔'은 김씨의 18번 곡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 부르는 애절한 노랫말이 김씨를 닮았다. "색소폰은 딸아이가 하늘에서 보내 준 또 하나의 선물입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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