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 앞둔 고재현씨 "63년만의 해후 부푼 꿈'

입력 2009-09-24 10:29:54

죽은 줄로만 알고 제사까지 지냈는데

63년 만에 북에 있는 형님 만나게 된 고재현씨

"몇 달 만에 만날 줄 알았지. 63년을 헤어져 살 줄 어떻게 알았겠어."

26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열리는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에 행사에서 형님을 만나게 된 고재현(74·대구 서구 내당동)씨는 "꿈만 같다"며 연방 환한 웃음을 지었다. 고씨는 29일, 해방 직후인 1946년 4월에 헤어졌던 친형 고재학(77)씨를 만난다.

당시 만주에서 살았던 고씨 가족은 고향인 성주에 있는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왔지만 14살이던 고씨의 형은 홀로 만주에 남았다. 고씨는 "해방 직후 만주에 살던 한인들이 갖은 고초를 겪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아 할아버지를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 잠시 다니러 간 것"이라며 "금세 돌아갈 생각이어서 모든 세간을 두고 오면서 형은 집을 지키기 위해 남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이 영영 이별이 되고 말았다. 1946년 4월만 해도 남으로 내려올 때는 38선을 두고 대치중이던 미군과 소련군 양측 모두 남북한 사이의 왕래를 은근슬쩍 눈감아 줬었지만 그해 6월 이후부터는 모든 왕래를 철저히 막은 것.

고씨는 "38선을 넘다 총살당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며 "더구나 호열자(콜레라) 전염병이 돌면서 도저히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돼 성주에 눌러 앉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후 고씨는 형님이 돌아가신 줄만 알고 제사까지 지내며 살았다. 그러던 중 형님이 살아계신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은 2년 전인 2007년 가을 적십자사에서 형님이 고씨를 찾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나서부터다. 고씨는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그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준 것만도 고마웠다"며 "올해는 저와 형 모두 동시에 상봉을 신청해 만남이 이뤄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제 닷새도 채 남지 않은 상봉일을 앞두고 고씨는 벌써 며칠째 가슴이 두근거려 밤잠을 설칠 정도다. 방 한쪽에 가방 한가득 싸 놓은 선물보따리 속에는 추운 북한의 날씨를 감안해 어렵게 구한 내의에서부터 비상의약품, 시계 등의 생필품이 가득했다. 고씨는 적십자사에서 보내온 상봉안내문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형님을 만나면 두 손 꼭 잡고 그간 못 나눈 형제 간의 정을 모두 나눌 것"이라며 "어떻게 만주땅을 떠나 북으로 가게 됐는지, 63년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긴 사연을 다 들으려면 사흘 밤을 홀딱 새워도 모자랄 것"이라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ma@ms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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