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위대한 70가지 여행/로빈 핸버리 테니슨 엮음
■역사상 가장 위대한 70가지 여행/로빈 핸버리 테니슨 엮음/남경태 옮김/역사의 아침 펴냄
아프리카 사하라 남쪽 지방에 살던 인류는 10만 년 전 여행을 시작했다. 먹고 살기 위한 여행이었다. 그들은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씩 무리 지어 수렵과 채집이 용이한 땅으로 이동했다. 사하라를 가로질러 나일강으로, 다시 서남아시아로 이동했다. 무리지어 함께 살던 아버지와 아들은 갈라섰고, 딸은 무리 밖에서 짝을 찾았다. 사람들은 걸핏하면 싸웠고, 싸우고 나면 떠났다. 해질 무렵 만났던 사람들이 동이 트면 헤어졌다. 인류는 그렇게 지구 곳곳으로 흩어졌다.
중세인의 여행은 대부분 종교적 목적을 띠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불경을 구하기 위해 서역으로 떠났고,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는 구원을 얻기 위해 여행했다. 칭기즈칸은 교역을 위해 여러 나라를 정복했고, 가는 곳마다 수십만에서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을 죽였다. 그가 도착하고 떠났을 때 집들은 허물어졌고, 그 자리엔 시체가 쌓였다. 맑고 차가운 물이 고이던 우물엔 풀이 돋아났고, 사원은 무너져 흙먼지가 날렸다.
지중해 베네치아 사람 마르코폴로는 당시까지 어떤 사람보다 많은 지역을 다녔다. 그는 23년간 중국에서 살았다. 그때만 해도 유럽은 동방 세계를 몰랐다. 마르코폴로는 중국의 거대한 운하, 세련된 신용제도, 세계 최초의 지폐, 불타는 돌(석탄), 불타지 않는 천(석면)을 보았다. 칸의 회관에서 6천명이 한꺼번에 식사하는 장면을 보았고, 파미르 고원에서 태평양까지 하루에 185km를 이동할 수 있을 만큼 잘 정비된 도로를 보았다. 그가 쓴 '동방견문록'은 유럽인들에게 미지의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유럽인에게 마르코폴로가 전하는 중국은 너무나 놀라운 세계였다. 유럽인들은 마르코폴로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임종을 앞둔 그에게 수사는 '거짓말을 털어놓으라'고 말했고 마르코폴로는 '내가 본 것의 절반도 말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인간은 지구의 전체 모습을 알게 됐다. 지구 모양에 대한 100년 논쟁이 촉발됐고, 피 끓는 탐험가들은 바다로 바다로 나아갔다. 아메리카를 경유하는 새로운 무역로는 돈벌이가 되는 길이었고, 쟁탈의 대상이 됐다. 유럽 열강은 지구 곳곳으로 침투했다. 타히티와 하와이에도 유럽의 배가 닿았다.
아즈텍을 파괴한 에스파냐 사람 에르난 코르테스는 여러 가지 호칭으로 불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관점에서 그를 위대한 장군, 정치가, 금에 굶주린 강도라고 불렀다. 코르테스는 세 가지 자질을 모두 갖춘 자였다. 돈벌이에 미친 그는 멕시코 계곡에 도착한 지 2년 만에 찬란한 아즈텍 문명을 철저하게 파괴해 버렸다. 93일 동안 아즈텍의 도시 테노치티틀란을 공격해 30만명의 주민 중 24만명을 죽였다. 그는 아즈텍의 수도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멕시코시티를 창건했다.
에스파냐인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잉카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비무장으로 나타난 잉카인을 철검으로 학살했다. 불과 두 시간 동안 그는 7천명의 인디언을 살해했다. 잉카의 훌륭한 정치제도는 파괴됐고 창고는 비었으며 가축은 도살됐다. 테라스와 건물은 허물어졌고 잉카인들은 노예가 됐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인의 여행은 과학적 호기심에서 출발해 돈벌이와 학살로 이어졌다.
19세기는 과학탐험의 시대였다. 연구자들은 원시 지역으로 뚫고 들어가 미지의 식물과 동물을 연구했고, 거기서 만난 부족의 경험과 지혜를 식별하고 기록했다. 지도에 없던 외딴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중앙아시아의 황야가 지도에 등장했다. 순순한 탐험 외에 명성과 명예를 추구하는 자들, 종교적 열정이나 애국적 열정에 사로잡힌 자들도 많았다.
영국인 리빙스턴은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횡단했다. 그는 '천둥같은 물보라'로 불리던 폭포에 '빅토리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찰스 다우티는 아라비아 사막을 여행했고, 러시아의 장교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는 중앙아시아를 탐험했다. 유럽인들의 아시아, 아프리카 진출은 이후 식민지 경쟁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곳곳을 침략해 식민지를 건설하고, 부와 노동력을 빼앗았다.
현대에 이르러 인간은 지구에 남은 마지막 지역을 공략했다. 극지대와 고산지대, 심해가 탐험 목표였다. 바다와 대기를 조사하는 정교한 장치가 등장했고, 의복과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인간은 새로운 변방을 차례차례 개척했다.
남극점에 두 번 째로 도착한 영국인 로버트 팰컨 스콧은 진정한 탐험가였다. 그는 경쟁자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경쟁자를 의식하지 않았기에 가는 곳마다 주변환경을 조사했고, 흥미로운 지형을 만나면 지질조사를 했다. 스콧 일행은 모든 장비와 보급품을 북극점까지 직접 끌고 갔다.
노르웨이 사람 아문센은 원래 북극점을 정복할 생각이었지만 피어리가 먼저 정복하자 목표를 남극으로 변경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스콧이 알까봐 철저하게 숨겼다. 여전히 북극점에 관심을 두는 것처럼 위장했던 것이다. 아문센의 탐험팀은 오직 승부에만 관심을 쏟았다. 과학자는 한명도 없었고 뛰어난 개썰매꾼과 스키에 능한 사람으로 구성됐다.
스콧의 탐험대는 남극점을 정복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나운 기후를 만나 한명씩, 한명씩 죽어갔다. 보급품을 저장해둔 곳을 18km 앞두고 그들은 텐트 안에서 죽었다. 음식도 물도 열기도 빛도 없는 텐트 안에서 그들은 18일 동안 생존했다. 스콧 원정대는 개의 힘을 앞세운 아문센에 패했지만 과학적 탐사목적은 훌륭하게 완수했다.
훗날 아문센의 원정 대원 헬메르 한센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스콧의 업적이 우리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스콧 일행이 썰매를 직접 끄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들은 모든 장비와 보급품을 북극점까지 가져갔다가 가지고 돌아왔다. 우리는 개를 52마리나 데리고 출발했고, 돌아올 때도 11마리나 남아 있었다. 조금이라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콧의 업적에 경의를 표할 것이다."
52인이 공동으로 집필한 이 책은 인간의 세계관과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70가지 여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시인의 여행에서부터 달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까지…. 인간은 언제나 길 위에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304쪽, 4만5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