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2년 부하 168명을 이끌고 잉카제국에 나타난 스페인 지휘관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아타우알파 황제를 알현하던 중 대뜸 황제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황제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요구했다. 가로 6.7m, 세로 5.2m, 높이 2.4m가 넘는 방을 채울 황금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5t에 이르는 황금을 받은 후 피사로는 약속을 어기고 황제를 처형하고 말았다. 황금에 대한 탐욕으로 원정을 떠난 피사로는 상상조차 힘든 황금을 차지했지만 제대로 써보지는 못했다. 내부 분란으로 부하의 칼에 찔려 죽음을 맞은 것이다.
금(金) 때문에 비운을 당한 인물들은 역사에서 숱하게 만날 수 있다. 로마 제1기 삼두정치를 이끈 크라수스도 그 하나다. 투자했던 돈을 만회하려 파르티아를 침공한 크라수스는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크라수스를 사로잡은 파르티아 병사들이 그가 금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펄펄 끓는 황금을 입에다 부어 죽인 것이다. 뱃속에 황금을 가득 채우고 저 세상으로 가란 저주였다.
1930년대 한반도에 불어닥친 '골드러시'에서 두각을 나타낸 '금광왕' 최창학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백수건달이던 그는 운 좋게 금광을 발견해 현재 가치로 1조 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그는 친일에다 해방 후 정치판을 기웃대는 기회주의적 삶을 살다 재판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또다시 금값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순금 3.75g당 소매가격이 18만 원에 육박하고, 국제 금값도 온스(28.35g)당 1천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 2월 소매가격이 20만 원을 넘은 것에 비해선 다소 낮은 편이지만 몇 달 전보다는 3만 원 가까이 오른 셈이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채굴된 금의 양은 12만5천t. 유조선 한 척에 거뜬히 실릴 이 금이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재물에는 재산을 뜻하는 재(財)와 함께 재앙을 뜻하는 재(災)도 같이 묻어 있다. 아마 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눈부신 광채 안에 질투와 분노, 지배와 복종, 침략과 살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몸에 좋다는 이유로 사우나 벽을 금으로 도배하고, 금가루로 파마를 하는 요즘 세태 역시 금에 대한 맹신이 번쩍거린다. 변하지 않는 금에서 '탐욕의 끝은 불행' '재물은 잘 쓰면 약(藥) 잘못 쓰면 독(毒)'이란 변하지 않는 진리는 눈이 머는 건가.
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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