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애의 고전음악의 향기] 가을, 사랑의 노래 '미르테의 꽃'

입력 2009-09-12 07:43:30

지금으로부터 169년 전인 1840년 9월 12일 오랜 소망이었던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비크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슈만의 나이 30세, 클라라의 나이 21세 되던 해였다. 클라라의 생일은 1819년 9월 13일이다. 즉 클라라는 21세 생일을 하루 앞두고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20세의 마지막 날 결혼한 스무살 신부였다.

9월 11일 결혼식 전날 슈만은 사랑하는 클라라에게 결혼 선물로 가곡집 op. 25 《미르테의 꽃》을 헌정했다. 미르테의 꽃은 신부 화관에 사용되는 향기가 짙은 꽃이라고 한다.

이 가곡집 안에는 예전에 우리 음악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던 '호두나무' 그리고 리스트가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해 널리 연주되는 '헌정'(Widmung)이 들어있다. 이 외에도 독일과 다른 나라의 낭만주의 시인들, 괴테(Johann Wolfgang Goethe, 1749~1832)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 뤼케르트(Friedrich Ruckert, 1788~1866) 등의 아름다운 시에 곡을 붙인 26개의 가곡이 슈만의 클라라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1840년은 슈만에게 클라라와의 사랑의 결실을 맺은 해일 뿐만 아니라 가곡의 성공이라는 기쁨도 얻은 해다. 슈만이 이 해에 모두 140개에 달하는 가곡을 남겨 '가곡의 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이는 클라라와의 어렵고 힘들었던 사랑,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시련과 고통의 시기에 마침내 마침표를 찍게 되면서 슈만으로 하여금 폭발적인 창작의 열정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당신은 나의 영혼, 나의 심장,

당신의 나의 기쁨, 나의 고통,

당신은 나의 세계, 그 안에서 살아간다네

나의 하늘인 당신, 그 속으로 날아가리

오 당신은 나의 무덤, 그안에

영원히 나의 근심을 묻었다오

당신은 나의 안식, 마음의 평화

당신은 내게 주어진 하늘

당신이 나를 사랑함은 나를 가치있게 만들고

당신의 시선은 나를 환히 비춰주며

너무도 사랑스럽게 나를 이끌어준다오

-《미르테의 꽃》 1번 '헌정' 뤼케르트의 시

요즘과 같이 사랑과 결혼조차도 물질적인 조건과 외형적인 요인들에 의해 쉽게 변하거나 바뀌는 세상에서 슈만과 클라라가 나눈 사랑과 결혼을 감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랑이란 조건과 보상 없이 오로지 사랑 그 자체만으로 열정적이고 감동적일 때 더욱 사랑이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을까. 피아니스트를 꿈꾸었지만 무리한 연습으로 손을 다쳐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었던,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슈만과 아직 완전히 꽃을 피우지 못했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미래를 약속받은 젊은 명피아니스트 클라라와의 사랑은 '헌정'(Widmung)의 가사를 음미하지 않더라도 '호두나무'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선율이나 피아노 반주에서도 충분히 느껴진다.

일찍 찾아온 가을이 조금씩 깊어져 가는 이맘때 사랑의 노래, 슈만의 《미르테의 꽃》을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Dietrich Fischer Dieskau)의 목소리로 들으면서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보는 건 어떨까.

음악칼럼니스트·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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