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취미있어요]수다 떠는 남자 테너 남상욱씨

입력 2009-09-10 15:06:21

누구나 편하게 대화…음악계 소식통 됐죠

대구국제오페라축제조직위원회 사무국장이자 이깐딴띠남성앙상블 단원으로 활동 중인 테너 남상욱(38)씨는 수다 떠는 남자다. 당당한 체격(키 180㎝, 몸무게 94㎏)과 어울리지 않는 취미(수다)를 가진 그는 수다는 여성의 몫이라는 통념을 깨고 있다.

남씨는 원래부터 말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청일점으로 여자들 속에서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담배 대신 수다가 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커피숍에서 30분 이상 수다 떨기가 어려웠는데 대학졸업할 즈음에는 3, 4시간도 거뜬하게 버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 수다에 대한 재능이 제 안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의 남자들이 술을 먹어야 말문이 열리는 것과 달리 그는 술을 먹으면 오히려 말수가 적어진다. 그래서 커피 또는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술을 먹어야 진실한 대화가 나온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술을 먹으면 실수를 하거나 횡설수설할 가능성이 높지만 맨 정신으로 3, 4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까지 주고받게 됩니다."

술을 마시지 않고 밤새 수다를 떤 적도 있다고 하니 술 좋아하는 남자들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취재를 하는 동안 그의 입에서는 말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취재 수첩에 받아 적는 일이 벅찰 정도였다.

남씨는 평소에도 주위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는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 소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잊어 버리지 않는 게 이야기의 원천이라는 것.

그는 수다를 떠는 데도 나름의 원칙을 정해두고 있다. 실수를 줄이고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다. 가벼운 농담으로 대화 분위기를 만든 뒤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 말을 많이 하는 만큼 다른 사람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인다. 특정인을 두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지켜야 할 비밀은 꼭 지킨다는 것이 그가 세운 수다의 원칙이다.

조심한다고 해도 말이 많으면 실수하게 마련이다. 남씨도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아차~' 하는 느낌이 오면 바로 화제를 바꾸거나 자신을 낮춰서 실수를 만회한다. 그래서 수다맨에 대한 주위 반응도 나쁘지 않다. 간혹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남자의 수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역 음악가들 사이에 술자리를 함께 하고 싶은 인물 1순위에 거론될 정도로 평판이 좋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말은 잘만 하면 사회생활에 도움을 준다. 누구와도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화력은 굉장한 자산이 된다. 남씨는 지역 음악계 소식통이다.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통하다 보니 만나는 사람도 많고 듣는 소식도 많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일을 하는 데도 수다는 도움이 된다. 오페라 한 작품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보통 200~300명 이상. 개성 강한 사람들을 융화시키고 썰렁한 분위기를 개선하는 데 그의 수다는 한몫을 톡톡히 한다. 특히 낯선 모임에서는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최근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서먹서먹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한동안 말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제 성격상 가만히 있지 못해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고 말을 걸었습니다. 일단 대화의 물꼬가 트이자 지금은 마치 계모임같이 친해졌습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사람에 따라 재미는 증폭되거나 반감된다. 어제 들은 이야기도 남씨의 입을 통해 오늘 들으면 더 재미있다고 한다. 그에게 수다는 즐거움이고 인생의 윤활유다. 지금도 그는 어느 누구와 수다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수다가 생활에 활력을 주는 역할을 한다면 남자들의 수다도 괜찮은 것은 아닐까.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사진: 수다가 취미인 남상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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