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역주행 문화 행정

입력 2009-09-10 11:06:58

대구시가 대구문화예술회관 신임 관장에 '결국' 공무원을 임명했다. '결국'이란 낱말을 쓴 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1996년 외부 인사를 관장으로 영입한 이후 13년 만에 '결국' 공무원의 몫이 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결국'은 대구시의 문화 행정 역주행(逆走行)에도 대구 문화계가 아무런 목소리를 못 내는 데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다.

대구시의 설명은 이렇다. 그동안 외부 인사 관장이 내부 조직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고, 중복 업무나 회계 관련에도 문제가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무원 관장을 임명했다는 것이다. 또 문예회관과 오페라하우스의 법인화와 조직 개편과도 맞물려 있어 1년 동안 공무원 관장이 조직을 안정시킨 뒤 다시 영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구시의 이런 설명은 구차하다. 이 문제는 첫 외부 관장 영입 때부터 제기됐다. 당시 법인화나 회계'경리를 제외한 나머지 직원의 전문가 영입이라는 대안도 제시됐다. 13년 뒤의 결론은 '네 탓'이고 대안은 다시 공무원이라는 것이다. 대구시 문화 정책 부재(不在)의 한 단면이다.

이에 대한 대구 문화계의 태도는 한마디로 무관심이다. 지역 인사가 임명되지 않았으니 별문제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동안 대구문화재단 대표이사나 오페라하우스 관장 등 외부 인사 영입 공모 때마다 시끄러웠다. 투서와 진정이 잇따라 대구시가 넌더리를 낼 지경이었다. 이번에도 문예관장을 공모해 지역 인사가 유력했다면 또 시끄러웠을 것이다. 대구시의 난데없는 공무원 임명은 대구 문화계의 이런 속성을 잘 알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이 참에 대구문화재단과 대구문예회관, 오페라하우스의 수장(首長)을 보자. 세 곳 공히 대구 문화계와는 무관하게 서울에서 활동하던 인사들이다. 모두가 대구 문화계의 갈등이 만든 상황이다. 오페라하우스 관장과 대구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추천위의 천거를 대구시가 무산시키고 외부에서 직접 영입했다. 얼마 전 물러난 문예회관장은 대구시가 갑자기 자격 규정을 까다롭게 만들어 사전에 내정된 인사를 영입한 경우다. '내가 아니면 지역 인사는 누구도 안 된다'는 대구 문화예술인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의 결과물이다.

물론 이들이 탁월한 기량으로 조직을 이끌었다면 대구시의 선택은 옳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페라하우스와 문예회관 관장은 그렇지 못했다. 자기 사람을 앉히려고 무리한 일을 추진하고, 행사에 친인척을 고용하기도 했다. 금요일 오후만 되면 서울로 떠나 공연이 빈번한 토'일요일에는 아예 자리를 비웠다. 조직 내 갈등과 금전과 연루된 구설수도 빈번했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마치 계약 임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조용했다. 공모 때의 잡음이 대구의 문화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 영달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갓 출범한 대구문화재단도 벌써 엇박자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지역 인사가 추천된 공모를 무산시킨 뒤, 현재 194억 원의 기금을 500억 원대로 확충할 수 있는 인사를 대표이사 영입 1순위 요건으로 꼽았다. 그리고 먼저 기금 확충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표이사의 첫 목소리는 10가지 문화 브랜드 개발이었고, 첫 사업은 각각 1억5천만 원의 국비와 재단 기금으로 4개 예술 단체에 3억 원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대구시는 기금 확충, 문화재단은 기금 사용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셈이다.

이들 세 기관은 대구의 문화 인프라 트로이카다. 대구 고유의 문화 창출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중심 단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단체의 수장은 이 도시의 문화 발전에 뼈를 묻을 인사가 맡는 것이 옳다. 대구시도 지역 인사 영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전문가 육성과 인적 인프라 구축으로 대구 문화 발전에 득이 된다. 정답이 나와 있는데 이를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이가 잘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대구 문화계의 풍토 탓이다. 이에 대한 자성(自省)이 없으면 문화도시 대구는 없다.

鄭知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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