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만병통치약

입력 2009-09-09 10:44:01

1898년 퀴리 부부가 발견한 방사성 원소 라듐이 한때 만병통치약으로 각광받았다면 믿을까.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돈을 벌려는 협잡꾼의 장삿속과 대중의 무지(無知)가 결합하면서 라듐은 '만병을 치료하는 기적의 돌'로 둔갑했다. 의사들은 새로운 치료법으로 라듐 광선 쏘이기를 권장했으며, 비누, 샴푸, 입욕제, 과자, 화장품에까지 라듐이 첨가됐다. "여성들은 어떻게 젊음을 유지하는가. '주노 라듐 크림'으로 얼굴을 관리하는 방법뿐입니다. '주노 라듐 크림'은 주름 지고 늘어진 얼굴 피부를 젊고 싱싱하게 만들어주고 이마의 주름살을 제거해주는 것은 물론 여드름이나 다른 불순물을 없애줍니다."(1918년 뉴욕트리뷴 신문의 화장품 광고)

라듐 방사능에 피폭돼 67세에 백혈병으로 숨진 마리 퀴리는 여러 차례 라듐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사용금지를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미국의 백만장자인 어븐 바이어스라는 사람도 그 같은 무지의 희생자였다. 그는 라듐이 함유된 음료 '라디토어'를 1천 병 이상 마셨다. 그 음료가 젊음을 지켜주는 만병통치약이라고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이었을 만큼 체격이 건장했던 그는 51세의 이른 나이에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베이징 원인(猿人) 화석의 발견도 만병통치약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가 시발점이었다. 원인 화석이 발견된 저우커우텐(周口店)에서는 옛날부터 화석화한 동물뼈가 많이 났다. 당시 중국인들이 용골(龍骨)이라 부른 이들 동물뼈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져 높은 값에 거래됐다. 소문을 들은 스웨덴의 지질학자 요한 안데르센이 발굴작업에 착수해 베이징 원인의 발견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게 된다. 중국인의 배 속에 들어간 용골에는 베이징 원인의 화석도 있었을 것이다.

신종플루 사망자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자 이를 악용한 건강보조식품이나 건강용품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이들 제품은 '면역력을 높여준다' '항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다' '세균을 죽인다' 등 허위'과장 광고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면역력을 높이는 식품도 있겠지만 신종플루에 직접 효과가 있다고 입증된 것은 없다. 사기꾼들은 소비자들의 불안과 무지를 파고든다. 괴질환에 악덕 상혼까지 신경 써야 하는 피곤한 세월이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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