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살 여자 아이. 친구들과 해맑게 웃다가도 낯선 사람과 맞닥뜨리면 웃음기가 싹 가신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곤 '네'가 전부. 4세가 돼서야 겨우 말문이 트였다. 대구 한 보육원에서 만난 선아(가명·여)는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난 다문화가정 2세다. 4년 전 첫돌을 지날 즈음 이곳에 왔다. 엄마가 집을 나갔고, 공사장 일용직으로 일하던 아빠는 술에 절어 살다 선아를 보육원에 맡겼다.
다문화가정 2세들이 아동 보육 시설로 내몰리고 있다. 가족 해체 이후 보육 시설에서 자라는 다문화가정 2세 대부분이 언어 장애나 대인 기피증으로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구·경북 31개 보육원의 다문화가정 2세들은 모두 10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2007년 이후 보육원에 맡겨졌다 집으로 돌아간 2세들은 9명이다. 전체 보육 아동 1천900여명 중 1% 가까운 수치다. 지역 보육 시설에서 자라는 다문화가정 2세들은 아직 소수지만 국제결혼 이혼율이 급증하면서 더욱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 남편과 결혼이민여성의 이혼 건수는 2002년 380건에서 지난해 7천962건으로 20배 가까이 늘었다. 지역의 다문화가정 이혼율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경북 다문화가정 이혼 건수는 456건으로 2006년 267건보다 배 가까이 늘었다.
윤희란 경북도 다문화가족지원 담당은 "다문화가정 2세들은 엄마의 가출로 인해 일시적으로 보육 시설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가출기간이 길어질 경우 대안이 없어 장기간 보육 시설에 머무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보육 시설에서 크고 있는 다문화가정 2세 10명 중 9명은 외국인 엄마의 가출 이후 아버지 손에 이끌려 보육 시설에 맡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보육 시설에서 생활하는 다문화가정 2세들은 갓난아기 시절 받은 상처와 버릇으로 고통받고 있다. 경북 한 보육원에서 만난 3세, 6세 남매. 말과 행동 모두 보통 아이들과 달라 보였다. 3세 동생은 아직도 말을 하지 못한다. 보육원 교사는 "두 돌이 지나도록 간단한 단어도 오물거리지 못한다"고 했다. 6세 오빠는 한여름이지만 선풍기 앞에만 있으면 겁을 낸다. 엄마에게 선풍기를 던지던 아빠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다.
보육원 교사들은 "아빠랑 같이 살 때 받은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 같다"며 "심리적 안정을 주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만 전문가 심리치료도 뒤따르면 좋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구교훈 베트남여성문화센터 사무국장은 "부모의 이혼이나 엄마 가출로 인해 보육 시설에 맡겨지는 다문화가정 2세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다문화가정 2세들의 성장 속도가 보통 아이들에 비해 뒤처진다는 점에서 2세들을 위한 보육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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