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관가 사람들은 고향이 헷갈리는 모양이다. 어디 과천뿐일까? 광화문 정부청사의 경우도 오십보 백보일 것 같다.
고위 공무원 A씨. 그는 지난정부에서 출신지를 서울이라고 했으나 현 정부 들어 경북 쪽으로 바꿨다. 과거 15년 동안 대구경북 출신 공무원들이 불리한 처우를 받았다는 얘기를 적잖게 들어왔던 터라, 서울 출신이라고 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경북 쪽으로 바꾼 것은 포항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 정부 출범과 함께 '커밍아웃'한 셈이다.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나가는 묘수(?)를 두기까지 했다. 최근 승진한 후에는 출신도를 ○○로 다시 바꿔버렸던 것. 이유가 궁금했다. 주변 얘기는 경북보다는 ○○출신이라고 하는 게 지역 안배 차원에서 인사에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단다. 그는 어릴 적 경북에서 자랐지만 부친을 따라 ○○에서 생활한 뒤 서울로 가 학교를 다녔고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
B씨는 A씨에 비해 감(感)이 늦었다. 작년 가을 때만 해도 "저는 대구나 경북과 별 관계없다"고 잘라 말하는 바람에 찾아갔던 고향 사람을 머쓱하게 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말을 바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아차!"하고 무르팍이라도 쳤을까. 부처 사람들에게 들으니 요즘은 경북 출신이라고 내놓고 말할 정도란다. 태어난 곳은 경북이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서울에서 생활해 왔다.
이들뿐 아니다. 지역에 연고가 있지만 출신지를 버젓이 서울이라고 했던 사람들 중 다수가 이제는 "대구(혹은 경북) 출신이다"고 강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C씨는 최근까지도 고민하고 있었다. 고향을 물었더니 "요즘들어 헷갈린다"며 "고향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감이 더 떨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출신지를 바꾸는 사람들을 꼬집은 것인지는 종잡기 어려웠다.
그는 어릴 적 경북에서 자랐으나 중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죽 생활했단다. 경북에서도 2개 지역을 옮겨 살았으니 고향을 어디라고 하기가 더욱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이왕이면 현 정부와 더 가까운 지역이면서 중학교까지 다닌 곳을 고향으로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떠봤더니 "태어난 곳은 그곳이 아닌데 그렇게 하기도 뭣하고…"라며 얼버무렸다. 그의 출신지에 대해서는 이전에는 서울로 돼 있었다는 얘기도 있으나 인터넷에는 태어났던 곳으로 돼 있었다.
고향을 두고 갈팡질팡하는 저변에는 무엇보다 출신지를 잣대로 사람들을 재단(裁斷)하는 세태가 자리해 있을 것이다. 개각 발표 때면 듣게 되는 지역 안배라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듯하다. 이쯤되면 고향을 놓고 갈짓자 걸음을 한다고 한들 무작정 비난만 할 일도 아닐 것 같은데, 씁쓸함만은 영 지우기 어렵다.
정권이 바뀌면 대구경북 쪽 중앙 공무원들 중에는 또다시 출신지를 놓고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잇따를 것이다. 어디 대구경북 쪽만의 고민일까.
지연(地緣)으로 개인을 평가하고, 편가르는 세태를 바꿔야 한다. 이대로 갔다가는 '어머니 품 같은 고향'은 영영 잊혀질지도 모를 일이다.
서봉대 정경부 차장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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