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세계 금융 위기 해소되었나?

입력 2009-09-07 11:12:32

15일이 되면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가 발발한 지 1년이 된다. 작년 이 날 미국이 자랑하던 세계적 투자기관인 리먼브러더스사가 파산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주가는 폭락하고 금융 시스템은 마비되었다. 일순간에 세계 경제는 100년 만에 다시 온다는 대공황의 두려움에 모두 휩싸였다. 그 후 1년이 지난 지금 다행히 세기적 경제 침체의 공포감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예상보다 빨리 금융 시장이 안정되고 경기가 회복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까닭이다. 세계 주가는 다시 예전 수준으로 회복하였다. 주요국의 국가 부도 위기로 급등했던 신용부도스왑(CDS) 금리도 급속히 하락하여 안정세를 되찾았다. 미국, 유럽, 일본의 경제성장률 역시 점차 호전되는 양상이다. 특히 각종 경제위기설로 시달리던 한국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경기가 회복되는 나라로 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럼 세계 경제는 이처럼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짧은 기간 내에 경제 위기의 늪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아직은 안심할 단계는 결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여전히 금융위기를 다시금 초래할 수 있는 뇌관들이 세계 도처에 숨어 있으며, 경기 회복세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 여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부동산 경기는 아직도 불안하다. 미국 부동산 가격은 최근에 들어서는 점차 약화되고는 있으나 큰 폭의 감소율을 기록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재고 물량도 위기 전 평균보다 월등히 많이 쌓여있다. 부동산 가격의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미국 금융위기는 이제 주택에서 상업용과 소비자 신용 부문으로 옮아갈 태세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 연체율과 소비자 신용 연체율이 올해 들어 급등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막대한 공적 자금으로 위기 상황을 봉합해 놓은 미국 금융기관들도 언제 또 터질지 모를 잠재된 화약고라 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실물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이들 금융기관들은 결국 경영부실의 몸살을 또다시 심하게 앓게 될 것이다.

경기 회복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딘 유럽도 잘못하면 대폭발이 일어날 금융 불안 지역이다. 일단 유럽 금융기관 대출금의 부실 규모는 유럽 국내총생산(GDP)의 5% 내외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그 이상일 것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서유럽은 동유럽에 막대한 자금을 대출해 주었는데, 벌써 이중 20% 정도가 부실화된 것으로 알려진다. 서유럽 국가 중 오스트리아의 경우는 동구에 대한 대출 금액이 국내총생산의 절반 이상이다. 또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의 발틱 3국의 부채 규모는 모두 자국 국내총생산과 맞먹거나 이를 초과한다. 동유럽 국가들의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서유럽 금융기관들은 일제히 부실덩이로 전환될 위기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동유럽 경기 침체 심화, 부채 상환 불가능, 서유럽 금융기관 부실, 금융 위기 재연의 개연성은 세계 경제에 잠복되어 있는 최대의 위험 요소라 할 수 있다.

정책 능력의 약화로 세계 경기 회복 기조가 앞으로 이어질 것이냐 하는 것에도 의문의 여지가 많다. 각국 경제가 당초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양호한 실적을 나타내는 것은 지난 연말부터 대대적으로 실시한 금융 안정책과 재정 지출 증가에 힘입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민간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정부의 정책적 노력은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무엇보다 재정 여력이 소진되고 금융 정책의 효험이 약화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재정적자는 계속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내수 부양 정책 역시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면 그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세계 경기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자마자 덩달아 가파른 오름세로 돌아선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도 세계 경기를 재차 고꾸라뜨릴 수 있는 돌출 악재다. 한국 경제도 내부적으로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막대한 가계부채와 국지적이지만 급하게 오르고 있는 부동산 가격이 경기 상승세를 약화시킬 불안 요인들이다.

경제위기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세계와 한국 경제는 불안한 경기 회복 궤적을 그리고 있다. 안정되고 지속적인 성장 궤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제 각국의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 고용이 증가하고 성장률이 높아지는 경제 성장의 선순환 구조가 다시 확립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리 인상과 같은 성급한 출구 전략에 대한 논의를 자제하는 한편으로 세계 경제 활성화를 위한 세계 각국의 정책 공조를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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