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심재창조, 옛것 살리기 부터"

입력 2009-09-05 08:10:50

"대구는 부산보다 훨씬 더 역사가 있는 도시입니다. 도심 골목의 정갈한 맛은 떨어졌지만 곳곳에 과거의 흔적과 이야깃거리가 남아 있기 때문에 잘 다듬으면 경쟁력은 충분합니다."

소설가 김원일씨가 4일 오후 대구 도심을 2시간 넘게 걸었다. 열세살 때인 1953년 대구에 와서 서울로 떠난 1968년까지의 기억을 더듬어 집과 건물들, 골목과 이야기들을 찾아냈다. 대구 중구청이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의 하나로 추진하는 소설 '마당 깊은 집' 테마화 사업의 설계에 앞서 마련한 자리였다.

"1950년대 중반 종로에 목욕탕이 하나 있었는데 한달에 한번씩 동생들과 갔습니다. 온탕에는 언제나 때가 둥둥 떠다녔고 종업원이 이따금 건져냈어요. 그래도 따뜻한 물이라고 수채로 버려지는 구멍 앞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은 빨래를 했습니다. 오래되지 않은 일인데 우리 사회는 당시의 어려움을 너무 쉽게 잊은 것 같아요."

김씨는 대구 도심재창조의 방향을 '우리 정신사 찾기'에 두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국적도 모르는 마구잡이 개발이 아니라 예전의 것들을 살려 뿌리를 찾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라는 이야기였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전후해서는 어느 나라든 내면화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되돌아보고 성장 과정에서 잃어버린 공동체와 문화들을 회복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이 과정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니 우리 사회 발전이 계속 정체되는 겁니다."

김씨는 종로와 장관동 일대를 몇 바퀴나 돌아다닌 끝에 '마당 깊은 집'의 원래 자리도 찾아냈다. 예전에 알려진 장소는 잘못됐다며 약전골목 인근 집터를 분명히 기억해냈다.

"소설을 테마화할 집을 마련하면 소장하고 있는 책 2천권 정도를 기증할 생각입니다. 위채는 도서관으로 만들고 아래채는 전후 생활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대구 중구청은 내년까지 종로와 장관동 일대 자투리땅과 골목 등에 소설을 형상화하는 예술작품과 시설물 등을 설치하는 한편 소설의 테마화 장소도 마련해 도심 투어 프로그램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마당 깊은 집=김원일이 1988년 6~9월 계간 '문학과 사회'에 나눠 실은 뒤 그해 11월 단행본으로 발간됐다. 1990년에 대구 출신 박진숙 작가 극본으로 MBC 8부작 드라마로 제작되고 추천도서로 선정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1992년 일본어판, 1995년 프랑스어판, 2000년 독일어판이 출간됐으며 올가을 러시아어 번역판이 나올 예정이다. 발간 후 지금까지 약 130만권이 판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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