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가 소란하다. 제비가 지저귀듯 참새가 재잘대듯 경쾌하고 들뜬 목소리가 이어지다가 깔깔거리는 하이 소프라노 멜로디가 끊어질 듯 반복되며 절정에 이른다.
교복을 입은 십대 소녀들이 무리 지어 앉아 있다. 소란스럽기는 해도 생기발랄해서 좋고 서로 몸짓을 섞어가며 장난치는 모습이 친자식처럼 밉지가 않았다. 환자 이름을 호명하자 그 중 제일 밝은 노란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한 한 소녀가 진료실로 들어온다.
"한달 전부터 머리가 빠져요!" 동전 크기만큼 둥글게 머리카락이 빠진 원형탈모가 두어군데 눈에 띈다. "약 먹고 그 부위에 주사 맞으면서 꾸준히 치료하면 다시 머리카락이 나니 걱정 말아요." " 옛날에 그 주사 맞아 봤어요! ××아프덴데…." 헉 이게 무슨 소리인가! 꿈 많은 십대 소녀 입에서 듣기 거북한 말들이 거침없이 나온다. 잠시 어리둥절해 있는데 같이 따라 들어온 친구 녀석은 진료실에 거울을 들고 "샘! 내 코 세우면 예쁘겠어요?"라고 주제에 관련이 없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해댄다. 그러고 보니 옆에는 조용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으로 껌을 씹으면서 우리를 응시하는 빨간 머리 친구가 한 명 더 있었다.
분주하게 세 아이들이 휘젓다가 떠나간 진료실은 다시 차분해졌지만 같은 또래의 자식을 키우는 나의 심경은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14세 소녀들의 연보라색 블라우스에는 담배 냄새가 짙게 풍기고 있었고 솜털이 사라지지 않은 얼굴에는 화려한 색조 화장품이 현란하게 그어져 있었다. 복숭아 속살처럼 아름다운 분홍빛 입술에서는 욕설, 비어, 속어가 주저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잠시 진료를 멈추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이튿날 이들이 또 무리지어 외래를 서성이고 있었다.
"원장님 원형탈모는 스트레스 받으면 심해지죠? 그런데 학교 선생님이 내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안 믿어요! ×짜증 나! 소견서 적어주세요!" 사연은 이러하다. 개나리처럼 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담임선생님이 다시 검게 염색하라고 하신단다. 자기는 검게 염색하면 스트레스 받고 그러면 원형탈모가 더 나빠지니 소견서에 자신이 스트레스 안 받게 해달라고 적어달란다. 하기야 내가 학교 선생님이래도 이 노랑머리의 말은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나저나 나는 어떻게 소견서를 적어주나? 어느 쪽으로 손을 들어줘야 할지 진퇴양난이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몇 마디 질문을 던지고 시간을 벌어본다.
"일주일에 몇 번 시내 나오냐?" " 매일 나와요." "뭐하냐?" "지하철에서 옷 갈아입고 가요방가요." "남자애들도 있냐?" "예. 오빠들 우리한테 잘해줘요"하면서 배시시 웃는 눈매가 천진난만하다.
자녀들은 일차적으로 부모가 키우지만 사회도, 남의 부모도 같이 키워야 하는 의무가 있다. 천진난만한 14세의 우리 아들딸들이 거리에서 담배를 사지 않도록 대낮에 지하철에서 화장하고 가요방에 가지 않도록 양육해야하는 책임은 우리 모두가 나눠져야 하지 않을까?
소견서를 작성하면서 잠시 기도한다. "사랑하는 딸들아! 멋진 분재 작품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가지나 잎사귀가 잘려 나가야 한단다. 너희들도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참고 이겨야 할 고통들이 있단다. 모쪼록 잘 견디고 참아서 멋진 어른이 되어라!"
053)253-0707 www.gounm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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