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란다방'을 아시나요

입력 2009-09-03 14:33:06

경산시 중방동 '돼지골목'에 가면 란다방이 있다. 귀퉁이 건물 란다방 앞에는 새벽 5시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운동복 차림의 중년에서 새벽잠이 없는 노인들, 또는 인근에서 새벽 술을 마신 진짜 술꾼 등 이들은 문이 열리자마자 언제나 그랬다는 듯 스스럼없이 안으로 들어선다.

이들을 맞아주는 사람은 이 다방 여주인 윤영옥(60)씨.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나와 커피 한잔과 계란 프라이를 하나씩 들고 가죠. 벌써 20여년이 넘은 새벽풍경이랍니다."

청춘남녀들이 찾는 세련된 커피가 도처에 넘치고 옛 정취를 잃어버린 다방들이 사라져 가는 요즘 란다방에는 새벽부터 훈훈한 인정과 추억을 담아내는 동네사랑방 같은 곳이다.

"단골 노인에게는 커피 값을 1천원만 받아요. 한 식구처럼 여기는 마음이기 때문이죠."

윤씨는 어려운 사정을 잘 아는 손님에게는 때론 밥도 대접하고 어떤 분들은 사무실처럼 수시로 드나든다.

"왜 힘들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나이든 어른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문을 안 열 수가 없지요. 20년 된 단골을 밖에 세워 두면 도리가 아니지요."

윤씨의 만년 단골손님 중에는 중년의 나이에서 70, 80대 노인이 된 분이 많고 세상을 떠난 어른들도 많다고 기억한다.

"혼자 사는 어른이 있었죠. 그 분이 오늘 저녁에는 따뜻한 여관에서 자고 싶다며 여관비를 빌려달라고 하더군요. 그 이튿날부터 어른이 보이지 않아 알아보니 돌아가신거에요. 며칠 후 그 어른의 아들이 찾아와 돈을 놓고 가며 고마워했어요. 어른이 머리맡 수첩에 모두 기록해 놓았나 봐요."

경산 토박이인 윤씨는 이 골목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예전 경산군청과 경찰서, 등기소가 있을 때는 이 주변이 버스가 다니던 번화가로 다방에는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다방 주인이던 할머니가 "한 자리에 3년은 있어야 먼지라도 남는다"며 시작한 일이 10년을 있게 됐고 결국 다방을 인수해 자리를 옮겨 영업을 계속 했다.

지금은 세월이 변해 새벽다방도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한다. 윤씨가 이곳 축구클럽에 가입해 있을 때는 회원 30여명이 새벽마다 들락거렸고 테니스 등 운동손님이 많았다.

"새벽운동 손님 때문이라도 문은 계속 열어야 합니다. 새벽 커피 한 잔에 넉넉한 마음이 오갈 수 있으니까요."

윤씨 나름의 여유와 인정이 이 다방에선 계속 될 듯하다.

경산·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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