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드라마는 착한 여자 주인공들의 무대였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전형적인 '콩쥐' 스타일의 여자 주인공은 그동안 여러 드라마에서 그 모습을 바꿔가며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캐릭터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마냥 착하기만 한 캐릭터는 오히려 구박받기 일쑤. 오히려 똑 부러지게 자기 일을 해내며 사랑도, 일도 쟁취할 수 있는 능력있는 악녀가 사랑받고 있다.
SBS 특별기획 드라마 '스타일'에서 캔디형 캐릭터 서정(이지아)과 실속을 챙기는 악녀 역할인 박기자(김혜수)의 대립이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지금까지 시청자들은 어리버리한 캔디 서정보다 박기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드라마 '스타일'에서 전형적인 캔디 캐릭터인 이지아는 연기력 논란을 빚고 있다. 이지아는 그동안 '태왕사신기'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캔디형 캐릭터만 맡아와 시청자들은 똑같은 연기에 싫증을 내고 있다. '서정'이라는 캐릭터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극 중 서정은 박기자의 인간적인 모욕을 못 참겠다며 과감히 사표를 던졌지만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후회하고, 모델의 드레스에 브로치를 꽂다 가슴을 찌르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모델의 옷을 잃어버리고 뚜렷한 능력 없이 허둥대며 인간적인 면모에 호소한다. 사고를 치고 나면 누군가 나서서 수습해준다.
반면 드라마 '스타일'에서 김혜수는 멋진 패션과 더불어 그 드라마를 실제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평가다. 박기자 역할을 맡은 김혜수는 입체적인 악녀 연기로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나가고 있다. 매회 뛰어난 정치력과 승부수를 던지며 차장에서 편집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후배에게 "니 스스로 너를 못 챙기면 남한테도 절대로 인정 못 받아"라고 일침을 놓는다. 이것은 여자 후배에 대한 따끔한 충고다.
악녀는 진화해왔다. 무조건 타인을 적대시하고 해코지하기보다 매력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일을 성취해나간다. 드라마 속 결과는 비록 캔디의 승리일지라도 악녀는 최선을 다한다.
매력적인 악녀에 대한 인기는 MBC '선덕여왕'의 고현정도 마찬가지. 미실은 주인공 선덕여왕과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주인공보다 오히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캐릭터다. 미실은 빼어난 미모와 색공술을 무기로 왕들과 화랑들을 좌지우지하며 권력의 중심에 선다. 권력을 위해서는 자식을 버리고 왕을 폐위시키기도 하는 등 갖은 술수를 쓰지만 시청자들은 그녀의 술수와 카리스마에 열광한다. 고현정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도 큰 몫을 하지만 미실이라는 캐릭터 자체도 매력적이다.
남자의 도움으로 살아남는 캔디형 캐릭터는 이제 과거형 여성으로 취급받고 있다. 일도, 사랑도 당당하게 쟁취하는 악녀들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