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학습능력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축적된 경험이 반복된 실수를 줄인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신종플루 사태를 맞는 우리의 모습은 낙제점에 가깝다. 이번 위기는 '병균과 인간의 전쟁'이다. 인류의 멸종까지도 예고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응은 무지와 자만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정부 여당의 발표를 보면 현실 인식의 정도가 드러난다. "신종플루 감염을 막기 위한 가장 유효한 수단은 예방접종이므로 조속히 백신이 공급되도록 할 계획"이란다. 웃기는 이야기이다. 만약 신종플루병원체들이 듣는다면 이렇게 되물을 게 뻔하다. "너희가 신종플루를 아느냐?"
신종플루는 지금도 변이를 계속하고 있는 인플루엔자의 변종이다. 하루에도 수차례 복제와 증식, 변이를 한다. 과연 인간의 능력으로 그 정체를 일일이 파악할 수 있을까?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타미플루'만 확보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타미플루' 구걸외교에 혈안이다. 그 외에는 무대책이다. 보건당국도 일상적인 감기와 신종플루를 구별하는 방법조차 모르고 있다. 대응책의 핵심을 모른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습한 자의 경험이다. 중국에서는 지난 5월 신종플루 의심환자가 베이징 공항을 경유하였다는 이유로 공항을 폐쇄하였다. 지금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입국 때 최소한 두세 차례의 발열검사를 한다. 중국 당국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2003년의 사스(SARS) 경험 때문이다. 당시를 회고해보자.
2003년 3월의 베이징은 봄이 되었음에도 봄 같지 않은 음산한 날이 계속되었다. 황사와 스모그가 뒤엉켜 태양은 실종되었고, 기침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불길한 기운이 확산되면서 조류독감의 변종이 발생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정보 빠른 한국 유학생들이 중국의 대표적인 감기약인 '반란근'을 대량 구매하기 시작했다. 일부 유학생은 귀국 준비를 서둘렀다. 그때까지 중국 공영TV는 독감확산과 주의를 당부하는 간단한 내용만을 보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베이징이 폐쇄된다는 소문, 사망자가 속출한다는 소문이 돌고, 중국 학생들은 고향으로, 외국학생들은 고국으로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태를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던 베이징 당국은 사스경보를 발동하고 상황통제를 시작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감염된 상황이었고, 그들 중 상당부분은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였다. 무지, 그리고 과신의 소치였다. 병원체의 실체를 모른 것은 의사도 마찬가지였지만 의사는 예외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덕분에 수많은 멀쩡한 환자들이 사스환자가 되고 말았다.
무지의 단계 이후 중국은 발 빠른 대응을 했다. 첫째, 감염경로를 차단했다. 베이징으로 통하는 모든 도로를 차단했을 뿐만 아니라 시내 모든 지역을 구역별로 폐쇄했다. 거리에 행인들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통제했다. 학교 출입구, 건물 입구마다 체온계를 비치하고 검역을 실시했다. 학생들은 해당학교를 벗어날 수 없었다. 특히 농촌지역으로의 확산을 철저히 통제했다.
둘째, 전염원을 제거했다. 사람의 분비물이 주요 전염원이라고 발표되고 침, 가래를 함부로 뱉지 못하게 했다. 길거리에서 침이나 가래를 뱉다가 적발되면 20위안의 벌금을 부과했다. 통풍, 환기, 청소, 소독, 청결 지침을 하달하고 강제로 실시했다.
셋째, 면역력을 강화하도록 했다. 한약을 달인 물을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적당한 운동을 권장했다. 스트레스, 과로에 대해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전체 학교에 휴교령을 발동했다. 우리의 경우 인삼, 홍삼과 같은 면역력 강화약제를 전 국민에게 투여하길 권한다.
넷째, 재난체계를 정비했다. 우선 각 직장단위마다 검역체계를 두고, 신고가 접수되면 응급차가 출동하여 유사환자를 이송했다. 전문병원을 지정하여 관리하고, 일반 병원의 경우 출입구를 양분화 시켜 발열환자와 일반환자의 접수처를 구분했다. 만약 사스로 의심되면 전문병원으로 즉각 이송하여 격리시켰다.
다섯째,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국가차원에서 연구팀을 구성하여 사스환자들을 관찰하여 구체적인 증상을 알리고, 백신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사회와도 공조를 강화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이 사스를 극복하고 올림픽을 치를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신종플루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이고, 기회로 활용해야 할 전쟁이다. 만약 우리도 중국처럼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기술로 신종플루를 제압한다면 장차 대한민국과 대구시는 세계 최고의 의약국가, 의약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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