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그들의 사랑을 위하여

입력 2009-09-01 11:01:48

매서운 바람이 한창이던 2007년 1월 어느 날, 필자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무기수(無期囚)가 상담을 희망한다'는 취지의 연락을 받고서 추위 때문에 딱딱해진 몸을 두꺼운 외투로 꽁꽁 동여맨 후 교도소로 향했다.

'변호인 접견실'이라 이름 붙여진 3.3㎡(1평) 남짓한 공간. 필자는 진갈색의 허름한 나무책상 위에 상담용지와 펜을 얹어 두고 낡은 의자에 몸을 기대어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어보려 하였지만 창문 한쪽을 비집고 들어오는 가녀린 겨울 햇빛이 자꾸만 필자의 눈을 괴롭혀 필자도 모르게 인상이 꽤나 찌푸려졌다. 순간 동네 아저씨 같은 남자 한 사람이 접견실 안으로 들어와서 창문 옆에 어설프게 드리워진 커튼을 정리했다. 그러면서 "변호사님, 눈이 부시면 커튼을 똑바로 치시지, 와 그냥 그래 앉아 계십니꺼. 아이고~, 커튼 이거는 먼지가 마이 끼었네"라고 말한 다음, 필자 쪽으로 몸을 돌리며 빙그레 웃는다.

거뭇거뭇한 얼굴 가운데 입 주위로 팔자 주름이 깊게 패어 있어 환갑의 나이는 족히 더 되어 보이는 그는 아래위로 파란색 수의(囚衣)를 입고 있었다. 그가 필자에게 첫인사를 건네었다. "변호사님 안녕하십니꺼, 제가 상담 신청을 한 ○○○입니더. 날도 추븐데, 먼 길 오신다꼬 고생 많으셨지예?" 사뭇 그의 태도가 변호사인 필자보다 훨씬 더 여유롭게 느껴졌다. 그는 필자에게 "변호사님은 멀리서 오셨는데, 저는 뭐 특별히 대접해 드릴 것도 없고…. 제 성의라고 생각하시고 이거 한 개 잡솨 보이소"라고 말하며, 급식으로 받은 두유 하나를 건넸다. 그런 다음 그는 필자에게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30대 중반에 저지른 과오로 인해 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그 후 여죄(餘罪)가 밝혀져 또 하나의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참회하며 묵묵히 첫 번째 무기징역형에 따른 수형생활을 계속해 오던 중 '모범수'로 인정되어 대통령 특별사면에 따라 무기징역이 '20년의 유기징역'으로 감형(減刑)되었지만, 몇 년 전에 두 번째 무기징역형의 집행이 개시되어 대통령 특사에 따른 감형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은 다음 필자에게 그의 심경도 조심스럽게 토로하였다. "내 잘못을 생각하면 사형을 당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묵묵히 수형 생활을 해왔고, 이렇게 수형 생활을 하다가 언젠가는 교도소 내에서 삶을 마감하는 것이 자신이 감내해야 할 죗값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한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교도소에 자원봉사를 하러 들어오는 여인과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부터 적법하게 출소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어졌다"는 것이었다.

그 후 필자는 그의 부탁에 따라 그의 석방을 위해 '형집행이의'(刑執行異議)라는 신청을 하였고, 법원에서는 '법률 규정이 없는 이상, 2개의 무기징역형을 별도로 집행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이유를 밝히며 위 신청을 받아들여주었다. 이로 인해 그는 그해 따스한 봄날, 25년 만에 부드러운 햇살을 맞으며 교도소의 높은 담장을 뒤로할 수 있었고, 결국 사랑하는 여인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다.

이 소식이 언론, 그리고 인터넷 매체를 통해 알려진 후 '무기징역형을 두 번이나 선고받았다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일 것인데 그런 사람을 왜 풀어주느냐'는 반응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법의 복잡하고 어려운 논리를 떠나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형벌은 응보(應報) 또는 복수의 수단이 아니라 참회와 개선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수감 생활을 통해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참회한 수형자들에게는 싸늘한 시선보다는 부드러운 용서와 화해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러한 점에서 출소자들에게 보내는 우리 사회의 냉혹한 시선을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교도소에 들어와서 청'장년의 긴 세월을 진심어린 참회의 시간으로 보내고, 환갑이 넘어서야 비로소 멍에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그가 이제는 그 어떤 얽매임도 없이 소중한 사랑을 키워가게 될 수 있기만을 간절히 희망할 뿐이다.

하경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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