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模倣自殺

입력 2009-09-01 10:59:54

헝가리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1933년 작곡한 피아노곡에 라즐로 자보가 가사를 붙인 'Gloomy Sunday'(우울한 일요일)는 많은 사람들을 자살로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헝가리에서 음반 발매 8주 만에 187명이 이 노래를 듣고 자살했다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도 벌어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작곡가 자신도 1968년 투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때문에 헝가리 정부는 1959년 이 곡을 금지곡으로 공식 지정했고 영국 BBC 방송과 미국 워싱턴 방송 등은 음악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삭제했다. 금지곡 처분은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자살 사건이 이어지면서 이 곡에 신비적 분위기를 덧칠하는 전설도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오케스트라 단원의 집단 자살설이다. 1936년 파리에서 한 오케스트라가 이 곡을 연주했는데 콘서트 도중 드럼 연주자의 권총 자살을 시작으로 단원 모두가 자살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얘기지만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이 노래를 듣고 많은 사람이 자살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2차 대전을 앞둔 유럽의 암울한 분위기가 이 노래의 애상적 곡조와 맞물리면서 자살 충동을 낳았다는 분석도 있고 헝가리가 전통적으로 자살률이 높아 특히 자살자가 많았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이 노래는 불특정 다수 간의 모방자살(模倣自殺)을 낳은 희귀한 사례로 꼽힌다.

우리나라 젊은이의 자살이 위험수위를 넘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20, 30대의 사망 원인 중 1위가 자살이었다. 주목을 끄는 것은 탤런트 최진실'안재환 씨 등 유명 연예인의 자살이 잇따랐던 10월에 20, 30대의 자살이 몰렸다는 점이다. 10월의 20, 30대 자살자 비중은 전체의 36.4%로 연중 가장 높았다. 이들 두고 유명인을 뒤따라 모방자살을 하는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명인을 나와 동일시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는 없다는 자인이나 마찬가지다. 인생에는 그보다 훨씬 보람 있는 일이 많다. 죽음까지도 같이할 만큼 유명인이 나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모방자살은 자신에 대한 업신여김이다. "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무릇 사람은 스스로 업신여긴 후 남이 그를 업신여긴다) 맹자의 경구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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