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대불 있어도 알려야 손님 온다" 국내외 총력 홍보
7월 말 나라(奈良)현청을 찾았을 때 일이다. 3시간 동안 취재를 마치고 나오니 현청에서 받은 자료가 작은 가방에 가득 차고 남을 정도였다. 그만큼 나라현청 공무원들은 한국에서 온 취재진들에게 하고픈 말이 많았다.
그들은 "한국과 이만큼 가까운 도시가 어디 있느냐"는 점을 강조했다. 역사적으론 그렇다. 우리 삼국시대 문화의 향기를 듬뿍 받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불교가 전래된 것도, 건축 기술과 불상 조각을 배운 것도 백제를 통해서였다. '나라'라고 하는 말도 '국가' '도읍'을 뜻하는 한국어다. 1970년 이래 경주와 자매결연을 한 도시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나라의 형편이 경주와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관광객이 연중내내 들끓지만 인접한 대도시 오사카와 관광도시 교토 사이에 끼어 관광수입은 시원찮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민은 무엇이고 어떻게 위기를 돌파하려고 할까?
◆의식을 바꾸자
얼마전만 해도 나라 사람들은 '대불(大佛)만 있으면 된다'는 인식이 강했다고 한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대불을 보려는 손님이 몰려들기 때문에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다는 뜻이다.
대불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도다이지(東大寺)의 청동대불을 일컫는다. 높이 16m, 얼굴 길이만 5m에 달하고 제작에 사용된 동(銅)만 해도 500t, 겉에 입힌 금(金)은 438t이나 된다. 엄청난 덩치의 청동대불이 안치된 대불전은 당연히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실제로 보면 장중함과 아기자기함을 함께 갖춰 세계문화유산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도다이지 경내를 어슬렁거리는 송아지만한 사슴만 아니라면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지겹지 않은 곳이다.
나라현청 관광과 니시우라 요시히코(西浦嘉彦)씨는 "예전만 해도 민'관 모두 대불만 건재하면 관광정책은 따로 필요없다는 의식이 강했다"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도보존 및 관광정책의 절실함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라고 했다.
실제 나라시에 가면 사슴공원 부근의 유적지 몇 곳을 둘러보고 나면 볼거리는 그것으로 끝이다. 도심에는 교토같은 전통가옥도 없고 층수 낮은 현대식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서 있을 뿐이다. 사찰'신사를 제외하고 나면 일본다운 정취를 거의 느낄 수 없는, 다소 어중간한 도시다. 대불 주변만 신경을 썼을 뿐, 여타 고도보존 정책은 다소 소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때문에 지난해 외국관광객 835만명(한국관광객은 238만명) 중 나라에서 숙박을 하고 가는 관광객은 10%가 채 안 된다. 오사카와 교토에서 기차로 40분 거리에 불과해 그곳에 숙소를 정해놓고 하루 관광을 하고 떠나는 게 보통이다. 특히 올해는 엔고, 신종플루 등으로 외국관광객이 절반 이상 줄어 위기감이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나라현이 크게 바뀌기 시작한 것은 아라이(荒井正吾)현지사가 3년 전부터 획기적인 관광정책을 추진하면서부터다. 가만히 앉아서 관광객을 받기보다는 활발한 홍보 및 국제교류를 통해 손님을 적극적으로 유인하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돌파구를 뚫어라
눈길을 끄는 부분은 솔직하고 담대한 홍보정책에 있었다. 현청이 앞장서 나라의 유적지와 유물 중 한국'중국과 연관된 부분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현청이 발행'운영하는 홍보책자 및 인터넷에는 도다이지 대불상과 아스카(飛鳥)대불상은 한반도 도래인들에 의해 전해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호류지(法隆寺) 5층탑은 부여 정림사지 석탑, 주구지(中宮寺) 미륵보살상은 금동미륵보살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식이다. 중국과 관련해서는 도다이지 남대문(南大門)은 송나라 사람 진화경이 설계했고 그 앞에 서있는 석조사자는 중국의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그렇게 따지면 나라의 유적지와 유물 대부분은 한국'중국과 연관되지 않는 것이 없게 된다.
기자는 "이런 홍보정책이 자존심 상하지 않느냐"고 묻자 나라현청 지역진흥부 다나카 도시나가(田中利亨)씨는 "일부 반발도 있었다. 그렇지만 사실을 그대로 얘기하고 한국'중국 관광객을 끌어들이는게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했다. 한국의 목조건물은 전란으로 소실됐지만 일본의 목조건물은 그대로 남아있는 만큼 이곳에서 두 나라의 건축물을 비교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실용적인 일본인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라현은 내년에 '헤이조(平城) 천도 1천300년제'를 통해 다시 한 번 도약을 준비 중이다. 나라는 서기 710년부터 784년까지 74년간 일본의 수도였고 원래 이름은 헤이조쿄(平城京)였다.
내년 봄에는 '꽃과 녹음', 여름에는 '빛과 조명' 가을에는 '천도 1천300년 기념식전'이라는 계절별 이미지를 활용, 축제를 준비중이다. 가장 중요한 행사는 나라 서쪽에 있는 헤이조쿄 유적인 다이고쿠덴(大極殿) 복원식이다. 우리로 치면 경복궁의 근정전 같은 곳인데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사신을 맞는 왕궁의 중심건물이다. 현재 널다란 왕궁터에 덩그러니 홀로 서있는 다이고쿠덴은 10년간의 복원공사를 거쳐 내년초 완공된다. 일본 정부는 다이고쿠덴 복원공사후 전체 왕궁을 순서대로 복원할 계획이다.
1천300년제에는 갖가지 세부행사가 많지만 한국'중국을 통해 전래된 고대 행사 재현이 눈길을 끈다. 휘돌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는 곡수연(曲水宴), 공을 차고 놀던 게마리(蹴鞠), 집단으로 노래하는 악극 형식의 우타가키(歌垣) 등이 있다. 충남도의 대백제전과 중국 상하이엑스포와 연계해 열리는 것도 재미있다. 이런 행사도 솔직하고 담대한 홍보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나라현은 내년에 1천만명의 외국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
나라현 광보광청과(홍보과) 요시오카 가주시게(吉岡一茂)씨는 "한국에 가면 나라는 대불만 있는 것이 아니고, 곳곳에 산재한 문화유적과 일본의 4계절을 느낄 수 있는 자연이 어우러진 고도라는 사실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라의 변신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기대된다.
글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